인재 통째 삼키는 블랙홀 열렸다…삼성도 반도체 구인 비명, 왜
반도체 업계는 10년 후 미래가 안 보인다는 반응이다. 29일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2031년엔 국내 반도체 산업 인력이 5만6000명가량 부족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022년엔 1784명이 부족하다고 집계됐었다. 약 10년 만에 ‘30배의 인력난’이 예고된 셈이다. 경계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사장도 지난해 9월 서울대 강연에서 반도체 구인난을 토로하며 “회사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사람”이라고 했다. 한국 첨단산업 R&D의 핵심 자원을 배출해온 서울대 자연과학·공과대학 석사과정 전공 28개 중 16개는 2023학년도에 정원을 채우지 못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인력 부족의 여러 원인 중 의대 쏠림 현상은 한 부분”이라면서도 “의대에 우리 사회가 쏟는 높은 관심에 비해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첨단 산업에 대한 무관심은 기이할 정도”라고 말했다. 미국 상무부 장관이 ‘반도체 인력 확보를 위한 이민법 변경’을 언급할 정도로 전 세계가 첨단기술 확보에 매달리는 상황이다. 또 한국은행이 경제성장률 전망에서 반도체 포함(2.1%)과 제외(1.7%)를 따로 언급할 정도인데, 국가 경제를 좌우하는 반도체 산업의 인력 부족을 방치하면 성장 동력이 무너질 거라는 위기감이다.
‘1784명 부족’에도 신음, 10년 뒤엔 ‘-5만명’
미래차 시장도 마찬가지다. 자동차산업 인적자원개발위원회는 2028년까지 미래차 산업 기술 인력이 4만 명가량 부족할 것으로 본다. 인공지능(AI) 분야 인력은 2027년까지 실제 산업계 수요보다 1만2800명이 부족할 거라는 고용노동부 분석도 나왔다. 의대 선호 현상에 출생률 하락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감소, 고급 인력 해외 유출까지 더해진 결과다. 현장과 연구를 섭렵한 인력은 이미 구하기 어려운 지 오래다. 업계에선 “국내 대형 반도체업체 공정 담당자조차 현장을 잘 몰라 클린룸에 1년에 1번도 안 들어간다”는 탄식도 나온다.
전 세계 ‘반도체 인력 확보’ 노력에 한국은 역주행
각국 정부는 이미 법·제도 개선에 나섰다. 지난해 대만은 세계 500위권 대학을 졸업한 외국인이 대만 반도체 기업 면접에 통과하면 조건 없이 비자를 발급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일본은 세계 100위 내 대학을 졸업한 외국인에게 첨단산업 분야 구직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2년짜리 비자를 내준다. 한국도 지난해 1월 첨단산업 전문인력 비자를 신설했지만, 한국어능력시험 점수와 국내 대학 유학 경력을 따지고 정규직 경력만 인정하는 등 경쟁 국가들에 비해 혜택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학과, 이제부터가 위기”
그런데 올해 입시에서 연·고대 반도체 계약학과의 정시 등록 포기율은 각각 130%, 73%에 달했다.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 분석에 따르면, 올해 대입까지는 이들 중 대부분은 의대보다는 타 대학 컴퓨터공학·전기전자학과 저울질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의대 정원이 늘면 반도체학과는 지방 의대에 중복 합격자를 뺏길 가능성이 크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과거에는 의대와 공대 지원자가 각각 다른 내용으로 학교생활기록부를 준비했지만, 최근 수시 학생부 서류가 단순화하는 추세라 의대와 공대 중복 지원·합격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봤다.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산업에 직결된 것이 반도체 학과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올해 반도체학과 진학을 고민하다 고려대 전기전자공학부에 지원, 합격한 서울의 김모(18) 군은 “삼성·SK 취업이 보장된다는 점에 끌렸지만, 산업 인력이 필요해서 만든 학과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반도체 업황이 단기적으로는 들쭉날쭉해도 결국 성장한다지만, 학생 입장에서는 ‘내가 졸업할 시점에 반도체 불황으로 취업이 어려우면 어쩌나’ 불안하다는 얘기다.
윤성민.심서현(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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