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다들 '바람'만 넣고 갔다, 동네 카센터 1000곳 사라졌다

폐업을 앞둔 서울 송파구 삼전동의 한 카센터에서 자동차를 정비하고 있다. 천권필 기자
서울 송파구 삼전동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는 박성삼(54)씨는 최근 가게를 내놓고 폐업을 준비하고 있다. 24세부터 이 동네에서 정비 일을 시작해 10년 만에 얻은 가게다. “20년 전만 해도 지갑이 안 접힐 정도로 장사가 잘됐다”는 가게를 내놓은 이유는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기 때문이다.

위기가 찾아온 건 5년 전부터다. 손님이 줄자 주변 카센터들도 하나둘 문을 닫았다. 박씨는 “5년 전엔 삼전동에 정비소가 16곳이 있었는데 지금은 6개가 없어지고 10곳만 남았다. 그마저도 대부분 직원 없이 사장이 혼자 일한다”고 했다. 늘어나는 전기차를 고쳐보기 위해 교육도 받았지만, 30년 동안 엔진을 만진 그에게 엔진이 없는 전기차는 전자제품 같아 결국 포기했다고 한다. 그는 “앞으로 5~10년 뒤면 더 어려워질 게 뻔한데 살길을 찾아봐야 하지 않겠나. 정비는 그만두고 빚을 내 지방에 자동차 검사소라도 차릴 생각”이라고 했다.
폐업을 앞둔 서울 송파구의 한 카센터에서 대표 박성삼 씨가 공구들을 바라보고 있다. 천권필 기자
2010년 이후 서울 카센터 1000개 줄어
동네 카센터가 사라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이른바 ‘카센터’로 불리는 전문정비업체 수는 서울 기준으로 2010년(9월) 3711개에서 2023년(9월) 2786개로 13년 사이에 1000개 가까이 줄었다. 친환경차 전환 등 빠르게 변화하는 자동차 시장의 여파가 내연기관차 중심의 정비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차준홍 기자
서울 도심 지역의 영세한 카센터들이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자동차 전문정비사업조합연합회(카포스)에 등록된 정비업체를 기준으로 서울에서 최근 5년 새 카센터가 가장 많이 줄어든 곳은 용산구였다. 2018년 63곳에서 지난해 23곳으로 40곳이 없어졌다. 다음으로는 ▶서초구(26곳) ▶중구(23곳) ▶강동구(21곳) ▶송파구(19곳)가 뒤를 이었다. 주로 임대료가 높은 지역들이다. 폐업을 결정한 박씨도 “임대료는 계속 오르는데 정비 수요는 줄어드니 버틸 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는 “주변에도 정비소 대신 썬팅 같은 외장 업체가 생기고 있다. 병원으로 따지면 동네 의원은 사라지고 피부과·성형외과가 늘어나는 셈”이라고 했다.

신차는 전기차, 오래된 차는 정비 대신 조기폐차
서울 한 대형 쇼핑몰 내 전기차 충전소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에서 카센터 시장이 빠르게 사라지는 건 자동차 시장의 무(無)탄소 전환이 큰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부의 친환경 보조금 정책으로 신차 시장에서 전기차의 비중이 커지고, 소형 트럭 등 운행이 많은 상용차가 높은 보조금 혜택으로 인해 빠르게 전동화 되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폐차업체에 조기폐차된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천권필 기자
여기에 조기폐차 되는 노후차들이 많아지면서 정비 수요가 전보다 줄었다. 환경부는 지난해부터 800만원의 보조금(승용차 기준)을 주는 조기폐차 지원 대상을 ‘배출가스 5등급 경유차’에서 4등급까지 확대했다. 최근 1년간 4등급 경유차는 15만 대, 5등급은 11만 대가 각각 줄었다. 화석연료 자동차의 누적 등록 대수 역시 처음으로 감소세로 돌아섰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화석연료(휘발유·경유·LPG) 자동차는 전년 대비 8만5000대 줄어든 반면, 친환경차(전기·수소·하이브리드)는 53만대 늘었다.

오래된 차는 고쳐 쓰기보다는 폐차장으로 가고, 신차는 엔진이 없는 전기차가 많아지다 보니 정비업체의 미래는 더 암울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에서 카센터를 운영하는 황경연씨는 “전기차가 와도 타이어 바람이나 넣어 달라고 하니 돈 될 게 없다”고 답답해했다.

카센터 4곳 중 3곳은 ‘나홀로 사장’
차준홍 기자
카포스 조사 결과, 전국 정비업체 중 1인 사업장의 비율은 74%에 달했다. 강순근 카포스 회장은 “직원 없이 ‘나홀로 사장’으로 일하면서 최저임금도 못 버는 카센터 사장들이 수두룩하다. 수입이 적다 보니 타이어 바람 넣는 것도 예전에는 서비스로 해줬지만, 요즘은 5000원에서 1만원씩 받는다”고 했다.

“전기차 전환 시 정비 수요 30%로 줄어”
자동차 시장의 전환 속도가 빨라질수록 정비업계의 위기는 전국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지난해 ‘미래차 산업전환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전기차로 전환될 시 내연기관 부품 중심의 정비 수요가 현재 대비 30% 수준으로 (줄어) 정비업계의 존속 및 고용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전환을 고려하지 않는 업체가 70.3%를 차지하고 있어 변화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정비업체 대표들은 최근 국회 앞에서 집회를 열고 “정비 업계는 정의로운 산업 전환에서 배제돼 소외 계층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의 지원 대책 필요하다”고 요구했다.
소형정비업체 단체인 한국자동차전문정비사업조합연합회가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국회 앞에서 정의로운 전환을 요구하면서 집회를 열고 있다. 천권필 기자
정비 수요와 공급 간에 ‘ 미스매치’가 발생해 전기차와 내연기관차 소비자 모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임기상 미래차타기 자동차시민연합 대표는 “지금도 전기차를 고칠 수 있는 정비업체가 부족해 전기차주들이 히터를 고치려면 여름까지 기다려야 하는 게 현실”이라며 “일부 정비업체를 대상으로 추진 중인 미래형 자동차정비소 전환 시범 사업을 대폭 확대하는 등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천권필(feeling@joongang.co.kr)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