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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샀는데…‘가품 의심 몽클’은 어떻게 트레이더스에서 팔렸나

이마트
지난해 말, 이마트 트레이더스는 점포 6곳에서 두 달 간 판매하던 몽클레르 패딩 중 일부가 가품으로 의심된다며 판매 상품 전부를 회수한다고 밝혔다. 문제의 상품은 여성용 패딩 ‘헤르미퍼’. 한 벌에 약 370만원에 달하는 고가인데도, 옷과 모자를 연결하는 단추가 헐거워 시착 과정에서 쉽게 떨어졌고 이런 불량 제품이 한두벌이 아니었던 것. 트레이더스 측은 “단순 품질 불량이 아니라 가품으로 의심된다” 며 회수에 들어갔다. 지난해 10월 22일부터 12월 15일까지 소비자 28명이 구매한 이 브랜드 패딩 30벌 중 3분의 2 이상이 회수됐고, 현재 환불 절차가 진행 중이다.

대형 마트서 어떻게 가품 팔렸나
트레이더스 하남점에 몽클레르 패딩이 진열된 모습. 인터넷 커뮤니티 캡쳐
문제의 제품은 병행수입으로 트레이더스 매장에 도착했다. 병행수입은 독점수입권자 아닌 제3자가 다른 유통 경로를 통해 진정상품(진품)을 국내 독점수입권자의 허락 없이 수입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몽클레르의 경우 국내 공식 수입원은 ‘몽클레르 코리아’다. 하지만 몽클레르 코리아가 아니더라도 해외에서 몽클레르를 수입해 통관 절차를 거치면 국내에서 판매할 수 있다. 트레이더스 역시 한 병행수입 전문업체를 통해 해외에서 패딩을 사 왔고, 이를 국내 물류센터에 보관 후 매장에서 판매했다. 다만 트레이더스는 패딩을 판매하기 전 실물 검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트레이더스 관계자는 “영수증 격인 새니타이즈드 인보이스(Sanitized Invoice) 등 구비 서류를 병행수입 업체로부터 제공받아 확인했고, 서류엔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통상 병행수입은 브랜드 본사와 거래하는 현지의 편집숍인 부티크, 부티크로부터 물건을 사오는 병행수입 업체, 업체가 물건을 납품하는 국내 유통 플랫폼의 구조로 진행된다. 본사는 부티크 숍에 물건을 파는 첫 단계에서 새니타이즈드 인보이스를 발행하는데, 국내 유통사는 이를 진품인지 확인하는 자료로 쓰고 있다.


김영희 디자이너
서류엔 문제가 없었다면, 가품 의심 제품이 어떻게 섞였을까. 국내 6명의 병행수입업계 관계자는 ▶병행수입 업체가 현지의 여러 부티크에서 물건을 확보하는 단계에서 진품 아닌 제품이 섞였을 가능성 ▶병행수입 업체가 서류와는 다른 물건을 유통사에 납품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27년째 명품 병행수입을 하고 있다는 A씨는 “본사 발급 서류가 진짜라 해도 서류에 패딩의 고유 번호가 적혀있는 건 아니어서, 상품이 가품일 위험은 언제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는 국내 다른 대형 유통사들은 사고 방지 차원에서 실물 검증 절차를 거친다. 롯데가 운영하는 ‘롯데탑스(TOPS)’와 NC백화점이 운영하는 ‘럭셔리갤러리’는 병행수입 명품 판매시 관세청의 관리·감독을 받는 무역관련지식재산권보호협회(TIPA)에 검증을 의뢰한다. 비용과 시간이 들지만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트레이더스측은 “가품 여부를 명확히 하기 위해 협력업체가 유통 전 과정을 다시 살펴보겠다고 한 상황”이라며 “병행수입 제품 판매 체계를 전면 개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개인도 뛰어든다 … ‘검증’ 중요해진 병행수입 명품
온·오프라인 유통 플랫폼들의 명품 판매가 늘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제품이 병행수입 제품인지에 대한 집계는 없다. 수입통관 시 관세청이 병행수입품만을 따로 분류하지 않고, 일반 수입품과 같이 관리하기 때문이다.

병행수입 업체도 다양해졌다. 1999년부터 명품 병행수입을 한 B씨는 “2000년대 초에는 소수만 참여하던 시장이었는데, 국내 소비자들의 명품 구매가 늘어난 2010년대부턴 대형 유통사가 뛰어들기 시작했고, 최근에는 1인 병행수입 사업자도 많다”고 말했다.


병행수입 업체가 늘며 가품 우려도 커졌다. 관세청의 2022년 지식재산권 침해단속 연간통계보고서에 따르면 통관 단계에서 지식재산권 침해 물품 적발 현황은 4만5514건, 수량으로는 1694만여개로 2018년 이후 적발 규모 중 가장 크다. 이 중 상표권 위반 사례가 4만4803건, 1522만여 개로 전체의 90%를 넘는다. B씨는 “오랜 기간 유럽 현지를 오가며 병행수입 명품의 신뢰도를 쌓아왔는데, 대형 유통사에서 이런 일이 생기는 바람에 병행수입 제품 전체가 의심받을까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김영희 디자이너
병행수입 명품을 판매하는 대형 온라인 플랫폼 관계자는 “유통구조 상 중간 과정이 많아질수록 가품이 섞일 확률이 높아진다”며 병행수입 명품 구매 시 가품 위험을 줄이는 세 가지 팁을 안내했다. ▶대형 플랫폼의 명품 전문샵에서 ▶실물 검증후 보증서 등 서류를 갖추고 ▶가품일 시 보상하는 제도가 있는 곳에서 구매하는 것이다.

인공지능(AI)·블록체인 활용 검증도
스톤아일랜드·파라점퍼스·노비스 등 80여개 브랜드는 써티로고와 협업해 제품 세탁라벨에 QR코드와 숫자를 이용한 진품 인증 장치를 삽입했다. 스마트폰으로 QR코드를 스캔하면 웹에서 정품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이수정 기자
‘가품 가려내기’는 명품 시장의 오랜 숙제다. 개인 간 거래 플랫폼 크림(KREAM)은 지난해 11월 개인 사업자도 크림을 통해 제품을 판매할 수 있게 서비스 약관을 변경했다. 병행수입 업체도 크림 검수를 통과한다면 판매할 길이 열린 것. 지난해 12월 기준 전월 대비 크림에 입점한 사업자는 59%, 판매액은 740% 증가했다. 크림 관계자는 “실험적이지만 인공지능(AI) 기술로 가품의 주요 특징을 체크해 검수에 활용하고 있다” 고 설명했다.

명품 제조사가 직접 진품을 인증할 수 있는 디지털 도구 개발에 앞장서기도 한다. 가품 유통은 결국 제조사 손해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지식재산청(EUIPO)은 지난 15일 발간한 보고서에서 EU의 의류 시장이 가품 때문에 연간 약 120억 유로의 수익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했다. 2021년 세계적인 패션그룹 루이뷔통모에헤네시(LVMH)와 프라다 그룹 등은 ‘아우라 블록체인 컨소시엄’을 만들고 블록체인 기반의 진품 인증 절차를 만들었다. 스톤아일랜드, 파라점퍼스 등 80여개 브랜드는 써티로고(Certilogo) 서비스와 협력해 제품의 세탁 라벨에 QR코드를 삽입해, 소비자가 스마트폰으로 진품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블록체인 기반의 진품 확인 서비스를 개발한 국내 스타트업 관계자는 “명품 제조사가 제품의 원산지 및 유통 정보를 블록체인 등 위변조가 불가능한 방식으로 제품에 내장하는 방식이 가품 논란을 피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수정(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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