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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공존과 평화:두 번째 70년을 향해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한반도 문제가 예사롭지 않다. 한국전쟁 정전 70주년을 막 지나 두 번째 70년의 벽두에 평화와 공존의 전망보다는 적대와 전쟁의 언명이 넘쳐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부와 최고 지도자의 정책과 언설은 특히 그러하다. 민족과 화해와 통일의 노선을 전면 폐기하고, 한국과 조선의 두 국가론을 공식 제기했다. 더 문제는 군사주의와 영토평정 기치의 결합이다. 당연히 통일과 대남 담당부서와 기구들은 철폐된다. 한국과 조선은 동족 관계에서 적대적 두 국가관계, 전쟁 중인 두 교전국 관계로 규정된다. 즉 군사관계(라는 인식)만 남는다.

남북을 교전국으로 규정한 북한
한국전쟁 당시 국토완정론 연상
대북 제어 위해 중·러와 협력해야
정부 각 기관의 조율된 역할 필요

대한민국은 국가이자 괴뢰로 호명된다. 반복되는 ‘괴뢰’ 규정은 동족과 남북 특수관계론은 물론 두 국가론조차 부인하는 자기모순의 극치다. 괴뢰론과 영토평정론의 동시 등장은 한국전쟁 이후의 모든 접촉과 관계 개선을 그 이전 상태로 돌리는 총체적 회귀로 비친다. 마치 한국전쟁 당시 한국에 대한 괴뢰 낙인과 국토완정론 결합의 시대착오적 재연처럼 보인다.

불행하게도 제반 상황은 한반도 문제를 군사관계로 선회시키려는 북한의 운신 공간을 넓혀주고 있다. 오늘날 남북관계와 북·미 관계는 양자 대화를 시작한 이래 최장 단절상태에 놓여있다. 한반도의 두 기축 관계가 이리 길게 동시 단절상태인 것은 처음이다. 북한의 고립과 폐쇄, 북핵과 미사일 문제의 방치와 자율이 장기화하고 있다. 군사위협의 고조 상태에서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더 이상의 방치는 안 된다.

최근 북·러 밀착과 북·중 관계 복원 역시 중대한 함의를 갖는다. 탈냉전 이후 한반도 안보 구도의 가장 큰 전환이 아닐 수 없다. 이미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중·러의 반대로 시작된 북핵 관련 대북 제재의 이완과 붕괴는 한층 가속되고 있었다. 한·중 및 한·소 수교 이래 견지되어 온 중·러의 한반도 균형정책과 부분적 한국 편향 정책이 다시 북한 편향으로 복귀한 것이다.



짧게는 탈냉전, 길게는 한국전쟁 이후 가장 주목할 변화는 북·러 군사밀착이다. 이는 핵 국가 사이의 밀착이라는 점에서 크게 위험하다. 근대 이후 유럽 국가로서 러시아는 동아시아 국가들의 전쟁으로 인해 잃을 게 없는 나라다. 한반도는 말할 필요도 없다. 러·일 전쟁 전후 근대 이래 한반도 분할의 의지와 정책 적극성 측면에서, 그리고 실제로 현대 한반도의 분단고착(1945~48년)과 한국전쟁 개시(1950년) 과정에서 가장 큰 군사적 역할을 한 나라는 단연 러시아(소련)였다. 자국 국익을 위해 다른 국가와 국민에게 피를 흘리게 하는 방혈(放血) 전략의 산물이었다.

러시아가 본격적으로 동아시아에 진출해 한반도 문제에 개입한 이후, 러일전쟁에서 한국전쟁 종전까지 동아시아는 처음 ‘세계전쟁 시대’에 진입했다. 그 과정에서 대륙과 해양의 경계국가 한국은 최대 피해국가였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지금 한반도 전쟁방지 및 대북 제어·압박·견제를 위한 중·러와의 대화와 협력은 필수이자 화급하다. 거기에는 이익의 교환은 물론 국제규범의 준수, 호의와 유인이 모두 포함된다. 중·러와의 한반도 안전과 전쟁방지 대화는 빠를수록 좋다.

공존과 평화를 위해 북한에 대한 정책은 두 가지의 결합이 요체다. 먼저 두 국가론을 우리가 더욱 공식화·국제화할 필요가 있다. 오늘날 한국과 북한의 체제와 이념, 국력과 위상에 비추어 더 늦출 필요는 없다. 이를 위해 유엔 동시 가입 당시의 주도성을 다시 발휘할 필요가 있다. 주권국가이자 유엔 회원국인 동시에, 종족·혈통·언어가 같다는 점만 빼고 주권·국가·이념·체제가 분리되거나 정반대인 정치공동체가, 두 독립국가가 아닐 이유와 필요는 전혀 없다.

다른 하나는 적극적 안보관리다. 충돌방지를 위한 합의를 공식 파기하는 전략은 실익이 없을뿐더러, 긴장을 고조시키려는 상대에게 말려들 수가 있다. 북한이 수없이 정전협정을 위반하고 또 백지화 선언까지 하였지만, 한국은 공식 파기를 언명하지 않았다. 또한 북이 핵 개발과 핵실험을 반복하여도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을 폐기하지 않았다. 그것은 한국에 합의 준수라는 국제적 위신의 확보를 넘어 대북 우위와 안전 유지라는 실익을 제공해주었다.

1·21 사태, 랭군(양곤) 사태, KAL기 폭파 등 연속적 폭력에도 불구하고, 압박과 대화의 확고한 결합을 통해 전쟁 방지, 남북 대화, 대북 우위라는 3중 목표를 달성한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부의 지혜로부터 오늘의 우리 정부가 깊이 배우기를 간청한다. 특히 당시 최고지도자들이 정보·안보·남북·외교를 담당하던 정부 각 기관의 서로 다른 판단을 지혜롭게 결합하여 어느 한 극단으로 기울어지지 않고 잘 조율된 전략을 추진하였음을 윤석열 대통령이 꼭 유념하길 빈다.

정전체제와 한미동맹을 축으로 한 전후 첫 70년 동안 한국 국가전략의 최대 성공은 전쟁방지였다. 이제 두 번째 70년을 시작하며, 전쟁방지를 넘어 항구적인 평화와 공존의 주춧돌을 놓을 때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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