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별 뉴스를 확인하세요.

많이 본 뉴스

광고닫기

기사공유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
  • 공유

[김원배의 시선]미래 일자리 팔아넘기는 경제간첩

김원배 논설위원
662조원 투자에 일자리 346만 개. 정부가 지난 15일 경기 남부 지역에 반도체 메가 클러스터 조성 방안을 발표하며 내놓은 청사진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투자하고, 정부가 기반시설 건설을 지원한다.

그런데 같은 날 서울경찰청이 반도체 기술 공정 도면을 무단 유출해 중국 업체에 넘긴 혐의로 전직 삼성전자 연구원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막대한 돈을 투자해 기술을 개발해도, 이를 외국 기업에 빼돌리면 격차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엄중한 사안이다.

하지만 다음날 영장실질심사를 한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별다른 범죄 전력이 없고 주거가 일정하며 수사에 성실히 임했고, 증거가 상당수 확보된 점을 고려해 기각했다고 한다. 지난해 6월 반도체 공장 전체를 중국으로 빼돌리려 한 혐의로 삼성전자 전직 임원이 구속됐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11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산업기술 빼돌려도 집행유예
대만, 법 고쳐 간첩행위로 처벌
무관용 원칙으로 엄정 대응해야

국민의힘 김성원 의원실이 사법연감 자료를 취합한 것에 따르면 2015~22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로 1심 판결 등이 난 114명 중 징역형이 선고된 사람은 10% 정도에 불과한 12명이었다. 이에 반해 집행유예는 40명이나 됐고 벌금형은 11명이었다. 무죄는 34명이었다. 유죄라도 실형을 사는 비율이 20%가 되지 않는다. 이러니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김영희 디자이너
물론 원칙적으로 불구속 수사와 재판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외국으로의 기술 유출 사건에선 범죄 전력이 없다는 게 영장 기각의 이유가 되어선 곤란하다. 이런 범죄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일자리를 외국에 팔아넘기는 행위다.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해야 한다.

증거가 상당히 확보됐다는 것은 한편으론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추가 범죄 혐의와 공범을 찾아낼 여지가 있다면 구속 수사를 하도록 해야 한다. 지난 18일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산업기술 침해 사범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양형기준안을 의결했다. 산업기술보호법도 여야가 함께 개정안을 마련해 법사위 심사를 받고 있다. 벌금액을 상향하고 손해 배상 상한을 인정 금액의 3배에서 5배로 높이는 내용 등이 담겼다.

하지만 이것 만으론 한계가 있다. 김민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기술이 유출된 경우 기업이 피해액을 제시하지만, 법원이 이를 엄격하게 보는 편이다. 피해액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으면 처벌이나 손해배상 수준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과 산업 보안전문가가 모인 단체인 한국산업보안한림원의 김동호 회장도 같은 문제를 지적한다.

“해외 기술 유출을 단순한 경제 범죄로 여긴다. 적발돼도 1년 정도 복역하거나 집행유예로 나오면 해외에 마련한 재산으로 편하게 지낸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외국은 적발되면 한 번에 레드카드를 내는데 우리는 옐로카드로 대응하고 있다.”

지난해 6월 산업기술을 해외에 유출한 사범을 간첩죄로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이를 담은 형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현재 형법은 적국(敵國)을 위한 간첩 행위만 처벌할 수 있다. 미국 등 주요국은 간첩죄의 대상을 적국으로만 한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회 법사위에서 법원행정처가 반대 의견을 낸 이후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다. 분단 체제의 한국에서 간첩은 ‘북한이 보낸 공작원’이란 인식이 강하다. 산업기술 유출에 적용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주장이 나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특히 산업기술 분야에선 적대국과 우호국 구분이 어렵다. 더구나 첨단 기술을 넘기는 행위는 군사 정보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이런 행위가 경제 안보에 큰 위협이 된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이루고, 처벌 수위를 높여야 한다.

형법상 간첩죄 조항과 산업기술보호법 등을 어떻게 조화롭게 구성하고 손 볼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산업스파이 대신 '경제간첩'이라는 용어를 정립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기술 유출에 대한 인식이 바뀐다.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과 경쟁 관계인 대만은 2022년 법을 개정해 군사·정치 분야가 아닌 경제·산업 분야 기술 유출도 간첩 행위로 처벌하고 있다. 미국엔 경제간첩법(Economic Espionage Act)이 있다.

한국은 앞으로 600조원 이상을 반도체에 투자한다. 기술을 지켜야 초격차를 유지한다. 그런데 외부 침입을 막는 성(城) 높이가 낮고 결함이 있다. 이를 보강하지 않으면 방어를 제대로 할 수 없다. 특히 법원의 인식 변화가 절실하다.



김원배(onebye@joongang.co.kr)

Log in to Twitter or Facebook account to connect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help-image Social comment?
lock icon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