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상승 꺾였다? 체감물가는 달랐다, 기름값·농산물이 복병
지난해 연말 들어 물가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이 3%대 초반으로 완만한 둔화세를 그리고 있지만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상승률(생활물가 상승률)은 4%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 비중이 큰 유가와 농산물 가격 상승세가 생활물가를 끌어올리면서다.23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2021~2023년 월별 생활물가 상승률은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평균 약 0.65%포인트 웃돈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0월 3.8%까지 치솟은 뒤 11월(3.3%)‧12월(3.2%)에 다소 둔화했지만, 이 시기 생활물가 상승률은 여전히 4% 선을 넘나들었다. 지난해 연간 생활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3.9%로 집계됐다. 소비자가 물가 둔화세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배경이다.
생활물가지수는 소비자들이 기본 생필품 등 소비자들이 자주 구입하는 144개 품목을 대상으로 조사한다. 소비자물가지수가 상품‧서비스 458개 품목 가격 변동을 나타낸다면, 생활물가지수는 구입 빈도가 높은 품목에 집중돼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끼는 장바구니 물가에 근접하다. 지난 11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체감물가나 생활물가 상승률이 소비자물가상승률보다 더 낮게 나오는 반면 우리나라는 체감물가 수준이 더 높다”고 짚었다.
체감물가 복병 떠오른 농산물‧유가
필수재인 에너지 가격 영향도 크다. 2022년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국제유가가 배럴당 130달러 선을 넘어 14년 만에 최고치를 썼고, 지난해엔 이스라엘‧하마스 사태 등 중동 지역 지정학적 리스크가 국제유가를 끌어올렸다. 국내에서 쓰이는 에너지 90%가량을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은 국제 에너지 가격 변동성에 특히 취약하다. 지난해 한은 분석에 따르면 유가 충격이 물가에 미치는 이차 파급영향은 2년 가까이 지속하는 경향을 보인다. 유가 상승으로 인한 기업의 비용 상승 부담이 소비자 가격에 천천히 오래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올해 체감물가도 여전히 부담
국제유가 가격은 최근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중동지역 위험이 고조되면서 공급 차질에 대한 우려가 남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감산 조치 강화 등으로 올해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대 안팎의 고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올 하반기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체감 물가에 부담을 주는 요인이다.
올 초 들어 농산물 가격도 다시 고개를 드는 모양새다. 23일 한은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생산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0.1% 올라 석 달 만에 상승했다. 농림수산품이 4.9% 올라 상승세를 이끌었는데, 연말 수요 증가와 작황 부진 영향으로 딸기(154.1%)‧사과(17.4%) 오름폭이 컸다.
최근엔 농산물 가격 안정화를 위해 수입 농산물을 확대해야 한다는 대안도 제시된다. 사과‧배‧복숭아 등은 수입 금지 품목인 데다 채소도 국산 소비 비중이 높다 보니, 농산물 가격 낙폭은 체감물가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물가를 잡으려다 농촌경제를 피폐하게 해선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수입 농산물 확대로 농가 수익성이 악화하면 지역 불균형을 초래해 도리어 사회적 비용이 늘어날 것”이라며 “안정적으로 농산물이 공급될 수 있도록 농업경영‧소득안정 장치를 확충하는 게 선결 과제”라고 지적했다.
오효정(oh.hyo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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