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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말] 창간호의 마력

누구나 애착이 가거나 왠지 짠한 물건이 있을 겁니다. 인형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부터 어릴 적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까지 저마다 기억의 물건이 다릅니다. 저에게는 문예지나 학술지의 창간호가 그렇습니다. 논문집이든 문학지든 간에 창간호, 1집을 보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창간호를 만들면서 느꼈을 설렘이나 환호, 또는 애태움이나 초조함이 느껴집니다. 그래서일까요? 왠지 창간호는 정성을 모아 만든 것이기에 좋은 기운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창간호를 보이는 대로 사서 모으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겁니다.
 
저는 헌책을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물론 새 책도 많이 삽니다. 헌책이 매력적인 것은 우선 희귀성에 있습니다. 많이 남아있지 않기에 저만 소유할 수 있는 자료가 되기도 합니다. 몇 권 더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이 연구에 사용하지 않는다면 저만 소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모두에게 소중한 책은 아닐지 모릅니다만 제 눈에는 귀한 책일 수 있습니다. 헌책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담긴 경우가 많습니다. 이름이 쓰여 있기도 하고, 메모가 담겨있기도 합니다. 가끔은 책갈피가 남아있기도 하고, 그 책을 준 저자의 글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메모가 남아있는 책이 더 귀한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헌책도 새 책처럼 깨끗한 경우에 인기가 높고 가치를 높게 칩니다. 제 책은 헌책으로 팔아도 값어치가 높지 않겠네요. 저는 책에 메모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헌책 중에서도 초판본은 비싼 경우가 많습니다. 희귀해서일 수도 있고, 처음 나왔다는 상징성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초판본은 저자도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초판을 출판사로부터 분명 받았겠지만 재판, 3판이 나오면 초판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선물해 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제 경우에도 제가 쓴 초판을 제가 갖고 있지 않기도 있습니다. 나중에 초판을 구하러 다녀야 할 수도 있습니다. 가끔 헌책방에서 자신의 책을 찾으면 그 기분도 묘합니다.
 
유명한 책과는 달리 학술지의 창간호, 1집은 남아있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가끔 오래된 학회에서 창간호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학회가 안정이 안 되었을 무렵에 창간호를 만들기에 펴낸 부수도 많지 않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도 적어서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의 학과에서 만든 학술지는 더욱 그러합니다. 자기의 것이라는 생각마저 적어서 창간호는 귀한 대접을 못 받습니다. 때로는 학과에서 펴낸 학술지는 창간호가 마지막 호가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니 엄청 의미 있는 책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창간호를 만들던 사람의 손길과 눈빛을 기억합니다. 그 정성을 기억하고, 그 마음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누군가는 창간호를 소중하게 여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창간호를 열심히 모으다 보니 뜻밖의 즐거움도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알려진 사람이지만 그때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사람의 풋풋한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시도 그렇고, 논문도 그렇습니다. 지금 보면 얼굴이 뜨거워질 수도 있고, 아련한 추억에 잠길 수도 있을 겁니다. 어쩌면 그 사람들도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창간호는 저에게 일종의 부적과도 같습니다. 첫 마음을 기억하게 만드는 마력의 부적입니다. 저도 제가 공부하던 시절의 기억, 글을 쓰던 시간의 기억을 창간호에서 만나기도 합니다. 전에 학과에서 ‘봄햇살’이라는 학술지를 만든다고 하여 논문을 실었는데 그 책이 2호까지만 나오고 폐간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쉬운 일입니다. 다른 학술지에 실었으면 검색이 될 텐데, 2호까지밖에 안 나온 학술지여서 검색도 되지 않습니다. 제 글이 담긴 봄햇살 창간호를 다시 꺼내봅니다. 추억이 아련합니다. 짠하다는 말은 이럴 때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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