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말 잘듣고…" 北과 싸운 27세 경찰, 74년 만에 가족 품으로
공격당하는 조국 앞에 망설일 여유는 없었다. “빨리 출동해야 한다”는 동료 경찰관의 다급한 요청에 보성경찰서 소속 김명손 순경은 다섯 살 어린 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엄마 말 잘 듣고 있어라”고 말한 뒤 곧장 집을 나섰다. 이 장면이 딸 송자(79)씨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다.1923년 2월 1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고인은 6·25 전쟁 당시 ‘호남지구 전투’에 참전했다. 북한군의 호남 지역 진출을 막기 위해 국군과 전남경찰국이 전개한 해당 전투에서 고인은 고창에서 영광 방향으로 진출하던 북한군 6사단 1개 대대와 맞서 싸우다 27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정규군 일부가 수도 방위를 위해 이동 배치된 가운데 경찰들이 대거 전투에 투입됐고, 고인도 그 중 하나였다. 이들의 희생 덕에 아군은 결과적으로 방어선 구축을 위한 시간을 벌 수 있었고, 부산 수호가 이 때문에 가능했다는 평가도 있다. 2000년 유해 발굴 시작 이래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는 총 226명이며, 이 중 경찰이 26명이다.
앞서 국유단은 삼학리 인근 야산에 북한군과 싸우다 전사한 경찰관 유해가 많이 매장돼 있다는 지역 주민의 제보를 토대로 2007년 5월 발굴 작업에 착수했다. 발굴 지역에서 30여 구의 유해를 수습할 수 있었는데, 이 중 신원이 확인된 경우는 고인을 포함해 23명이다. 고인의 딸 송자씨가 아버지의 유해라도 찾고 싶은 마음에 2014년 유전자 시료 채취에 응했고, 국유단은 고인의 유전자와 대조분석해 가족관계로 최종결론을 내렸다.
송자씨는 “꿈만 같아 며칠 동안 울기만 했다. 어머니가 살아계셨을 때 아버지를 찾았으면 좋았을 텐데, 아버지가 그리워서 ‘연락선은 떠난다’라는 노래를 늘 불렀다”며 “이제 국립현충원에 안장되면 자주 뵈러 갈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유해 발굴 작업은 시간과의 싸움”이라며 “조국을 지킨 모든 영웅을 기릴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 지지와 동참을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이유정(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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