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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철의 리믹싱 셰익스피어] 셰익스피어, 결혼과 출산을 권하다

셰익스피어의 소네트는 10음절짜리 행 14개(4-4-4-2 구조)가 규칙적 라임(각운)과 함께 움직이는 정형시다. 총 154편 중 빼어난 것을 고르고, 동시대적 사운드를 입혀 새로 번역하면서, 지금-여기의 맥락 속에서 읽는다.
신형철의 ‘리믹싱 셰익스피어’ ①

아름다운 피조물을 볼 때면 그것이 번성하길 바라지
그러면 미의 장미가 절대 죽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
시간이 흘러 보다 숙성한 것들은 스러지는 것이지만
그 기억은 어린 후계자들이 품어 지니게 되는 것이고.
그러나 자신의 빛나는 눈동자와 약혼해 버린 당신은
자신에게서 끌어낸 연료로 제 빛의 불꽃만을 태우고
그래서 풍요가 있어야 할 자리에 기근을 초래하니


그대는 그대의 적, 어여쁜 자신에게 너무 가혹한 적.
지금 그대는 이 세계를 신선하게 장식하는 중이고
화려한 봄을 가져오는 단 하나의 전령사인 것인데
자신이 가진 걸 제 봉오리 속에 묻어버리는 당신은
어린 구두쇠, 소비하지 않음으로써 낭비하는 사람.
세계를 불쌍히 여기길, 그러지 않으면 그대는 탐식가,
세계의 몫인 것도 당신과 당신 무덤이 먹어 치우니까.
〈소네트 1, 신형철 옮김〉

“모나리자가 ‘아름다운 여인’의 대명사인 것처럼, 셰익스피어 소네트는 ‘사랑 시’ 그 자체와 거의 동의어가 돼버렸다.” 이렇게 말한 사람은 소네트 전문가이기도 한 영국 시인 돈 패터슨인데, 그는 덧붙이기를, 어떤 작품이 이런 위치에 오르면 사람들은 읽었다고 착각하거나 읽은 척 연기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 그러지 말고 제대로 읽어 보기로 하자. 고색창연한 번역 투로 말고 동시대적인 언어(사운드)를 입혀 다시 번역(리믹싱)해 보면, 뜻밖에 현대적인 시여서 놀랄 때도 있을 것이다. 154편을 다 다룰 순 없을 테니, 시공간의 허들을 스스로 넘어오는 것들로만, 셰익스피어가 2024년의 한국 시인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독신 아들의 부모가 작품 의뢰
154편의 첫 17편 결혼·출산 권면
생육 거부는 세계 몫 빼앗는 것
대문호의 충고 지금도 타당한가

"생육하고 번성하라"
154편 중에서 첫 17편은 내용상 한 묶음이다. 청자에게 이성애적 결합과 후계자 생산을 권면하는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어 ‘출산 시편(procreation poetry)’이라고 불린다. 한 미청년이 결혼을 마다하자 그를 설득하길 원한 부모가 셰익스피어에게 의뢰해 쓰게 한 시들로 알려져 있다. 이 열일곱 편이 다 엇비슷하고 지루해서 소네트집을 초반에 덮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래도 이 첫 작품은 중요하다. 다른 열여섯 편의 키워드가 망라돼 있고, 품질 면에서도 가장 뛰어나다는 평이다. 그래서 저자가 시기상 제일 나중에 써서는 1번으로 올린 경우가 아닐까 추정하는 이들도 많다.

셰익스피어는 154편의 소네트를 남겼다. 사랑시의 대명사처럼 받아들여진다. 김지윤 기자
통념의 권위에 호소하며 시는 시작된다. 아름다운 피조물을 보면 번성하기를(increase) 바라는 게 인지상정 아니냐는 것. 화자는 창세기의 신이 피조물 창조 이후 “생육하고 번성하라”(창세기 1:28)고 한 것을 떠올렸으리라. 그런데 ‘당신’은 그런 신(자연)의 뜻을 거역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르키소스처럼 자기와 사랑에 빠져버려서 풍요가 있어야 할 곳에 기근을 초래했고(5~8행), 자신이 가진 것(생식의 재료)을 축적만 하다가 쓸모없게 만들고 있으니까(9~12행) 말이다. 앞의 모습은 자신만을 태우고 스러지는 초, 뒤의 모습은 꽃피고 열매 맺기를 거부하는 봉오리 같다. 그는 그 자신의 ‘적(foe)’이면서 타인에겐 ‘구두쇠(churl)’다.

마지막 두 줄은 자못 근엄하다. ‘세계’와 ‘당신’의 대치 상태라고 할까. 당신이 태어난 것은 세계가 당신에게 준 선물이니, 당신은 세계에 후손을 남겨줘야 공정한 거래가 된다는 것이다. 자식 없이 죽는 것은 자기 몫만 챙겨 먹고 세계엔 빈 접시를 주는 꼴이라는 것. 그런 그에게 화자는, ‘적’과 ‘구두쇠’에서 더 나아가, 이젠 ‘탐식가(glutton)’라는 별칭을, 7대 죄악 중 하나인 탐욕(Gula)을 암시하면서, 선사한다. 콜린 버로, 스티븐 오겔 같은 주석가들은 마지막 구(“by the grave and thee”)에서 세계의 몫을 ‘탐식가’가 두 번 빼앗는다고 읽는다. 한 번은 생전 그의 고집으로, 또 한 번은 그의 죽음으로.

나르시시즘 강요하는 현대 사회
헬렌 벤들러는 화자가 청자를 ‘적’과 ‘구두쇠’에 비유할 때 이는 정신과 육체의 문제를 각각 지칭한다고 나누어 읽기도 한다. 말하자면 타인을 향한 정신적 관심도, 육체적 열정도 없다는 것. 누군가에게 이런 진단은 400년 전의 이름 모를 청년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이곳의 청년들에게 더 적중하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철학자 한병철은 『에로스의 종말』(2012)에서 경쟁 사회의 압력이 오직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데에만 몰두하는 나르시시즘적 주체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구보건복지협회의 제1차 저출산인식조사조사(2022)에 따르면 청년들의 65%는 연애를 안 하는 중이고, 그중 다수가 자발적 비연애 상태다.

셰익스피어의 화자는 ‘아름다운 비혼·비출산 청년’에게 세계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400년 뒤의 청년들은 반박할 자격이 있다. 아름답지 않은 사람은 어찌하든 상관없는 것 아니냐고, 불쌍한 건 세계가 아니라 우리라고. ‘탐식가’를 꾸짖는 화자는 결혼과 번식이 신의 뜻 혹은 자연의 이치라고 되받으리라. 그러나 신의 뜻을 대리해온 가부장제의 목소리(‘성 역할론’)는 더는 여성들을 속이지 못한다고, 또 자연의 이치로 말할 것 같으면 현재의 청년들이야말로 자연의 새로운 목소리(‘생존하라’)에 적응한 신인류라고 응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네트는 여기서 그만 읽어도 될까? 아닐 것이다. 화자에겐 비밀이 많고, 이 드라마는 154부작이다.
◇신형철=2005년 계간 문학동네에 글을 쓰며 비평활동을 시작했다. 『인생의 역사』 『몰락의 에티카』 등을 썼다. 2022년 가을부터 서울대 영어영문학과(비교문학 협동과정)에 재직 중이다.


'소네트 1' 영어 원문
From fairest creatures we desire increase,
That thereby beauty’s rose might never die,
But as the riper should by time decease
His tender heir might bear his memory:
But thou, contracted to thine own bright eyes,
Feed’st thy light’s flame with self-substantial fuel,
Making a famine where abundance lies,
Thyself thy foe, to thy sweet self too cruel.
Thou that art now the world’s fresh ornament,
And only herald to the gaudy spring,
Within thine own bud buriest thy content,
And, tender churl, mak’st waste in niggarding.
Pity the world, or else this glutton be,
To eat the world’s due, by the grave and t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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