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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까지 뜯어고치는 김정은…"韓 불멸의 주적, 대남기구 폐지" 대못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5일 최고인민회의에서 선대의 통일 유훈인 '자주,평화통일,민족대단결'을 헌법에서 삭제하고, 새 헌법에서 한반도 전체를 북한의 영토로 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불변의 주적"인 대한민국을 유사 시 수복하겠다며 전쟁도 불사하는 흡수통일의 의지를 드러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5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 참석한 모습. 노동신문. 뉴스1.
반백년 역사 돌린다
김정은은 이날 평양에서 열린 한국의 국회 격인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헌법에 있는 '북반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들이 이제는 삭제돼야 한다"며 헌법 개정을 주문했다.

김정은이 지목한 표현은 북한 헌법 9조에 명시됐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북반부에서 인민정권을 강화하고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힘있게 벌려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며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의 원칙에서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한다"는 내용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5일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에 참석한 모습. 노동신문. 뉴스1.

특히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은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일성 전 주석이 7·4 남북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3대 통일 원칙이다. 북한은 1992년 기존 헌법의 "외세를 물리치고 조국을 평화 통일한다"는 대목을 삭제하고 해당 원칙을 삽입했다. 하지만 이제 이를 사실상 되돌려 대남 흡수통일을 시사하는 대목을 부활시킬 것으로 관측된다. 김정은이 선대가 쌓아온 대남 기조와 통일 유훈까지 뒤집는 건 이번이 사실상 처음이다.
법으로 '영토 완정' 뒷받침
김정은은 실제 이날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로 한다'는 한국의 헌법 3조를 문제 삼으며 북한 또한 "주권 행사 영역을 합법적으로 정확히 규정 짓기 위한 법률적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에는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김정은이 최근 강조해온 '영토 완정(完整)', 즉 적화통일 의지를 아예 헌법에 못 박겠다는 뜻이다. 특히 '수복'이란 단어를 통해 한반도 전체가 원래 북한 영토였다는 인식을 더 확고히 드러냈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헌법을 개정하면서 한반도 전체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영토라는 점을 구체적으로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며 "김정은은 통치 규범을 확고히 하고 이를 인민에게 각인시키는 데 있어서 법령보다 더 확실한 건 없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은의 이런 대남 적대 기조 '굳히기'가 외부 뿐 아니라 내부의 인식 전환을 염두에 둔 것일 수 있다는 취지다.

15일 평양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 노동신문. 뉴스1.

실제 북한은 지난해 9월 최고인민회의에서도 북한은 핵을 사용한 선제타격 가능성을 열어둔 핵무력정책법을 헌법에 명시했다.

이는 대남 압박 뿐 아니라 추후 대미 협상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이뤄지는 것이라는 분석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민족관계를 폐기하고 남북을 교전국화하는 내용을 헌법화한다는 건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는 북·미라는 것을 미국에게 각인시키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16일 경기도 파주시 오두산전망대에서 바라본 황해북도 개풍군 북한군 초소에서 군인들이 오가는 모습. 뉴스1.
주민 통제까지 법제화
김정은은 또 "북과 남을 동족으로 오도하는 잔재적 낱말을 사용하지 않고, 대한민국을 제1의 적대국으로, 불변의 주적으로 확고히 간주하는 교육교양사업을 강화한다는 것을 해당 조문에 명기하는 것이 옳다"고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는 '삼천리금수강산', '8천만 겨레' 등 표현을 쓰지 말라고 했다. 북한이 2020년 12월 한류 등 외부 문화 유입을 막기 위해 제정한 '반동문화사상배격법'처럼 주민들의 사상적 이탈을 법으로 막고 처벌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대내적으로 경제 제재와 코로나19로 어려움이 가중된 상황에서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려 대남 적개심을 고취하는 것"이라며 "대남 노선 변경 책임을 우리에게 전가해 우리 사회 내부에 분열을 조장하는 심리전의 일환"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김정은은 이날 지시했던 일련의 헌법 개정 사항을 당일 최고인민회의가 아닌 차기 회의의 심의 안건으로 미뤘다. 북한의 헌법 개정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개정할 수 있다. 선대의 유훈을 단번에 뒤집기보다 주민을 설득해 명분을 쌓을만한 시간을 확보하려는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또 구두 경고부터 실제 헌법 개정까지 시차를 두고 대남 압박 수위를 높이려는 의도라는 지적도 나온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의 개헌은 자주 이뤄지고, 상위에 당 규약이 있기 때문에 헌법이 바뀐다고 (북한의 방침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15일 평양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 회의. 노동신문. 뉴스1.
대남기구 폐지 본격화
한편 이날 최고인민회의에선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의 폐지를 결정했다. 조선중앙통신은 "내각과 해당 기관들은 이 결정을 집행하기 위한 실무적 대책을 세울 것"이라며 "근 80년이라는 장구한 세월 '흡수통일', '체제통일'을 국책으로 정한 대한민국과는 언제 가도 통일을 이룰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정은은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사태 이후 "금강산 남측 시설을 싹 들어내라" 지시(2019.10) →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2020.6) → 남북 통신연락선 최종 단절(2023.4) 등을 통해 남 측과 '연 끊기'에 골몰해왔다. 앞서 지난해 연말 김정은의 지시에 따라 이미 최선희 외무상 주도로 통일전선부를 비롯한 대남 기구 정리 절차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이번 최고인민회의 결정으로 관련 작업에 보다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김정은은 이날 평양의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 철거도 지시했다. 조국통일3대헌장기념탑은 김정은이 이번 회의에서 헌법에서 지우라고 지시한 '평화·통일·민족대단결'의 조국 통일 3대 원칙을 비롯해 전 민족 대단결 10대 강령, 고려민주연방제 통일방안 등 김일성의 통일 업적을 선전하는 상징물이다.

김정은은 또 개성에서 신의주까지 이어지는 경의선 북측 구간에 대해 "회복 불가한 수준으로 물리적으로 완전히 끊겠다"며 "접경 지역의 북남(남북) 연계 조건을 철저히 분리시키겠다"고 밝혔다.



박현주(park.hyun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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