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금리 8연속 동결…이창용 "인하 논의 자체도 시기상조"
이날 한은에 따르면 금통위원 5명 모두 향후 3개월 금리를 3.5%에서 동결하면서 물가 안정 기반을 확고히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개월째 3%대 고공행진 중이고, 근원 물가(식료품·에너지 제외)도 3% 안팎이라서다.
금리를 묶은 배경엔 완전히 가시지 않은 가계부채 불안도 있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소폭 낮아졌지만, 100.8%로 100%를 웃돈다.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1095조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제 임기가 지나서라도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적어도 90% 미만으로 떨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창용 총재는 시장의 '조기 인하' 기대를 차단하는 발언을 내놨다. "금통위원들은 현 상황에서 금리 인하를 논의하는 것 자체가 시기상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개인 의견을 전제로 "(향후) 6개월 정도는 금리 인하를 예측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힌 뒤 "금리 인하가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보다는 부동산 가격 상승 기대를 자극하는 부작용이 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금리 인상까지 열어뒀던 통화정책 흐름이 바뀌는 신호도 나왔다. 앞서 지난해 11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 있던 "추가 인상 필요성을 판단해 나갈 것"이란 문구가 빠졌다. 이 총재는 "물가 둔화 추세가 지속하고 있고, 국제유가·중동 사태 등의 리스크가 완화되면서 추가 인상 필요성은 낮아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경기 측면에선 금리 인하 명분이 더 커진 상황이다. 올해 들어 태영건설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논의 등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으로 대표되는 대출 부실 우려가 커졌다. 내수 흐름이 부진한 상황에서 올해 2% 안팎의 '저성장' 예측도 이어지고 있다. 한은은 최근 한국 경제를 두고 "소비 회복세가 예상보다 약화했다"고 진단했다.
다만 이 총재는 부동산 PF 문제에 대해 "태영건설은 부동산 PF 중에서도 위험 관리가 잘못된 대표적 사례다. 우리나라의 시스템 리스크로 번질 가능성이 작다"면서 "시장이 흔들리면 (한은이) 대포를 쏠 수도 있고, 소총으로 막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소총 쏠 정도도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가운데 각국 금리의 가늠자가 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피벗'(통화정책 전환) 시기는 유동적이다. 미 Fed가 기준금리(5.25~5.50%)의 올해 인하를 시사했지만, 최근 들어 속도 조절 신호가 나오고 있다. Fed 인사들이 조기 금리 인하 경계 발언을 잇달아 내놓은 게 대표적이다. 이날 시카고상품거래소(CME) 페드워치에 따르면 Fed의 3월 금리 인하 가능성은 69% 수준으로 연초 90%까지 올랐던 것보다 떨어졌다.
이 때문에 금리를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한 한은의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하를 압박하는 요인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 블룸버그는 "올해는 전 세계적으로 '금리 인하의 해'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물가 둔화 등이 뚜렷해지면 Fed가 상반기 중 피벗을 본격화하고, 유럽 등 주요국도 기준금리를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면 한은도 금리 인하로 돌아설 유인이 커진다.
공동락 대신증권 연구원은 "통화당국이 기준금리 인상 사이클 종료를 공식화한 반면, 인하 논의에도 명확하게 선을 그었다"면서 "3분기 금리 인하가 개시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 경제 지표, 국내 가계·기업 부채 등을 고려하면 한은이 하반기에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정종훈.오효정(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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