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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도둑

김영애 수필가

김영애 수필가

집에 도둑이 들었다. 연말이면 도둑이 기승을 부린다는 소리를 심심찮게 듣긴 했지만 아쉬운 한 해를 부정적으로 끝맺으려나 보다. 강산이 세 번 바뀔 시간을 같은 집에서 살았어도 도둑이 든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현관문을 열어두는 등 무방비 상태로 지내 온 나였다.  
 
무뢰한 도둑들은 벌집 쑤셔 놓듯, 가지런하던 집 안의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서랍 속의 옷이란 옷은 물론, 가구들도 전쟁 포로 다루듯 방 가운데에 마구잡이로 내던져 팽개쳐 놓았다. 반듯하게 걸려있던 커다란 안방 액자는 중심을 잃고 한쪽 모퉁이에 삐딱하게 걸쳐져 반쯤은 공중에 뜬 채로 간절히 구조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과의 하룻밤 외박에 대한 벌이라도 받는 듯, 온 집 안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고요한 침묵 속에서 온아하게 흐르던 집안 고유의 질서와 평안은, 삽시간에 침범당한 채 상처받고 찢어지며 온몸이 난도질당했다. 난장판이 된 집 안을 돌아보며, 보금자리를 허가 없이 침범한 도둑을 향한 증오와 혐오는 한동안 나의 혼을 들끓게 했다.
 
한참 후에 달려온 경찰은 뒷마당에 설치된 CCTV를 돌려보았다. 마스크와 모자를 덮어쓴 세 명의 도둑들이 집 뒤쪽 유리창을 깨고 침범해 삼십 분 뒤 집을 떠나는 영상이 CCTV에 고스란히 녹화되어 있었다. 나는 전날 얼마 되지는 않지만 집안의 모든 현금을 들고 집을 나섰었다. 돈을 찾아내려는 도둑들의 삼십 분에 걸친 필사적인 테러는, 골드러시 시대 금광을 찾으려 혈안이 됐던 광부들처럼 숨 막히는 시간으로 이어졌으리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침입한 도둑이 초보인 것 같았다는 점이다. 내 재산 목록 1호인 제일 값나가는 손목시계를 무시하듯 카펫 바닥에 떨어뜨리고 간 것을 시작으로, 남편이 고이 숨겨놓은 현금도 그대로 두었기 때문이다. 아들의 몇 푼 안 되는 때 묻은 동전통과 진짜 같았던 내 가짜 보석상자를 통째로 들고 나갔을 만큼 그들은 어설펐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 못 한 도둑이 어리석고, 찾지 못하는 것을 찾으려고 온 집을 쑥대밭으로 망가뜨리며 힘을 쏟아부은 것이 오히려 불쌍해 보였다.
 


생각해 보니, 도둑은 집 안의 물건을 훔치는 짓뿐만 아니라 삶의 도처에도 존재하는 것 같다. 도난당할 수 있는 것이 어찌 물건뿐일까. 삶에서도 진짜와 가짜를 구별 못 해, 진실한 자기 생의 가치관이나 목표를 도둑맞고, 물질적인 것만을 찾아 헤매는 안타까운 영혼이 얼마나 많은가. 또 자신의 고유하고 아름다운 영혼을 도난당한 채, 남과 비교하며 자신의 고귀한 가치를 하찮게 여겨 불행해지는 혼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문득 어수룩한 도둑을 통해 내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본다. 이제껏 혹시 물질보다 더욱 소중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도둑맞고도 어리석은 나머지 그것조차 모르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했던가. 이제부터 영혼을 도둑맞지 않도록 순간순간을 단속하며 살아가리라 마음을 다짐한다.

김영애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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