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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기억]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

불을 밝혀야 할 시간이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이내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칠흑 같은 밤이 찾아온다. 아직 읍내에 나간 아버지도, 막차를 타고 내려올 아들도 귀가하지 않았다.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처럼 멀리서 오는 식구에게 기다림의 신호를 보내야 할 시간이다.
 
사람들이 고향을 묻는다. 고향에 누가 있느냐고도 묻는다. 돌아갈 집이 있느냐, 기다려주는 누군가가 있느냐는 물음이다. 먼 길을 걸어가도 그 길 끝에 어머니가 계신 집이 있으면 고향은 언제나 달려가고 싶은 곳이었다. 그때는 왜 항상 막차를 탔는지 모르겠다. 하룻밤 더 자고 환한 대낮에 여유 있게 가도 되련만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양 한밤중에 길을 나서곤 했다. 그 조급함은 어머니의 기다림과 닿아 있었다. 어김없이 어머니는 불 밝히고 밥상 차려놓고 기다리고 계실 터. 어머니뿐이랴. 온 식구가, 툇마루 아래 멍멍이까지도 눈치를 채고 귀를 쫑긋 세우고 기다릴 것을 알기에 밤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가로등도 없는 밤길에 돌멩이에 걸리고 눈 녹아 질척거리는 진 땅을 밟아도 발걸음은 자꾸 더 빨라졌다. 걷는 듯 뛰는 듯 서둘러 저 멀리 우리 집 불빛이 보일 때, 이윽고 멍멍이가 짖어대고 방문이 열리며 온 식구가 쏟아져 나올 때, 그 순간의 먹먹한 기쁨은 타향살이의 어설픔과 고단함을 위로하는 보약이었다.
 
현대인이 잃어버린 것 중 하나가 새벽이라지만 칠흑 같은 밤이 먼저다. 도시의 밤이 대낮처럼 환해지면서 옻을 칠한 듯 깜깜한 밤하늘에 보석처럼 빛나는 ‘별 볼 일’도 없어지고, 어둠을 모르니 밝음도 시들하다.  
 
어느새 밤이 가장 긴 동지를 지나 겨울이 깊어져 가는 중이다. 깜깜하면 발이 묶이던 그 시절 시골집에서는 저녁밥 먹고 나면 별수 없이 온 식구가 모여서 복닥거릴 수밖에 없었다. 살붙이의 정이 쌓이는 겨울밤이었다. 칼칼한 겨울바람이 매섭던 그 칠흑 같은 밤, 불빛 따뜻하던 어머니의 집이 다시 그립다.

김녕만 /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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