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언의 시시각각] 유시민에서 정의찬까지
서울대 경제학과 3학년생으로 복학생협의회 집행위원장이었던 유씨는 그 글에서 이 사건을 ‘정권과 학원 간의 상호 적대적 긴장이 고조된 관악 캠퍼스 내에서, 수사기관의 정보원이라는 혐의를 받은 네 명의 가짜 학생을 다수의 서울대 학생이 연행·조사하는 과정에서, 혹은 약간의 혹은 심각한 정도의 폭행을 가한 사건’이라고 정의했다. 그가 말한 ‘혐의’라는 것은 서울대생이 아닌 사람이 서울대 안을 돌아다녔다는 정도였다. 소지품에서 학생들 동향을 파악해 적은 메모 같은 것도 나오지 않았다. 피해자 중 한 명은 방송통신대 학생이었는데, 리포트 작성 때문에 서울대 교수를 만나러 왔던 것으로 경찰 수사에서 확인됐다.
유씨는 항소 이유서에 ‘가능한 한 짧은 감금과 비폭력이라는 원칙을 관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실제로 이 원칙이 관철되었으므로 본 피고인은 아무런 윤리적 책임도 느끼지 않습니다’고 썼다. 도덕적 잘못은 없다는 주장이었다. 감금 시간은 짧게는 22시간, 길게는 6일이었다.
유씨는 재판부에 ‘정치적 의미’를 생각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렇게 글을 이었다. “전후 맥락을 모조리 무시한 채 조사를 위한 연행·감금마저(폭행 부분이 아니라) 형사 처벌 대상으로 규정한 1심의 판결은 지금 이 시간에도 갖가지 반사회적 목적을 위해 교정을 배회하고 있을 수많은 가짜 학생 및 정보원의 신변 안전을 보장한 ‘가짜 학생 및 정보원의 안전 보장 선언’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유씨는 항소심에서 감형돼 징역 1년 형을 받았다. 도주한 공범 백태웅·이정우·윤호중씨 등 당시 서울대 학생회 간부들도 체포 뒤 비슷한 수준의 처벌을 받았다. 국가기관의 학교 정탐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선 학교 안에서 수상해 보이는 사람을 감금해 조사하는 것은 윤리적 책임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행위라는 유씨 주장에 동조하는 이가 많아졌다. 운동권은 ‘대학생 개똥이와 쇠똥이가 민간인 말똥이를 감금 폭행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용인되는 세계가 됐다.
1989년 연세대에서 프락치로 의심받은 설인종(당시 전문대 2학년)씨가 학생 8명으로부터 감금·폭행을 당하다 숨졌다. 1997년 5월 전남대에서 이 대학 학생으로 신분을 속여 온 이종권(당시 25세)씨가 남총련 학생들의 집단 폭행으로 사망했다. 폭행에 가담한 학생들은 이씨가 숨을 거둔 것으로 보이자 그를 교정으로 옮겨 방치했다. 범행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그해 6월 한양대에서 한총련 간부들이 학생회관 주변에 있던 선반기능공 이석(당시 23세)씨를 붙잡아 가혹행위를 했다. 이씨는 과다출혈 등으로 숨졌다.
전남대 사건 주범이 정의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특별보좌역이다. 남총련 의장이었던 그는 상해치사죄로 징역 5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사면(김대중 정부 시절)을 받았다. 이재명 대표의 측근인 그는 민주당의 공천 적격심사를 무난히 통과했는데, 범죄 경력을 확인한 언론의 비판이 잇따르자 당이 취소했다. 이 대표 지지자들과 상당수 민주당 의원은 그를 탈락시킨 것이 부당하다며 ‘구명’ 활동을 벌이고 있다. 유시민씨로부터 정의찬씨에 이르기까지 도덕적 용인 범위가 감금·폭행에서 치사로 확대됐다. 40년 새 이른바 ‘민주화 세력’은 이렇게 흑화(黑化)했다.
이상언(lee.sang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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