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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 뒤 노숙인에게 책과 현금 쥐여줬다, 어느 판사의 위로

한 판사가 노숙인 피고에게 선고를 내린 뒤 따뜻한 위로와 책, 현금 10만원을 건넸다. 고립된 생활을 하다 우발적으로 범죄에 휘말린 노숙인이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을 나눴다.

25일 부산 지역 언론 등에 따르면 부산지법 동부지원 형사1단독 박주영 부장판사는 지난 20일 특수협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남성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하고 보호관찰 2년을 명령했다. A씨는 지난 9월 28일 오전 1시경 부산의 한 편의점 앞에서 다른 노숙인 B씨와 함께 술을 마시다 말다툼을 하게 되자 손수레에 보관하던 칼을 꺼내 위협한 혐의를 받는다.

박주영 부장판사. 사진 김영사
박 부장판사의 판단으로 실시한 ‘판결 전 조사’에 따르면, A씨는 칼을 드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칼을 밟아 부러뜨렸다고 한다. A씨는 “손수레에서 술자리까지 약 4m가 떨어져 있어 B씨는 칼을 든 자기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를 목격한 시민의 신고로 경찰은 A씨를 체포했고, 주거가 일정치 않다는 이유로 구속했다.

박 부장판사는 선고 직후 A씨에게 “앞으로 생계를 어떻게 유지하느냐”며 “주거를 일정하게 해 사회보장 제도 속에 살고 건강을 챙기라”고 당부했다. 박 부장판사는 또 책을 좋아한다는 A씨에게 중국 작가 위화의 책 『인생』과 현금 10만원을 쥐여주면서 “나가서 상황을 잘 수습하고 어머니 산소에 꼭 가봐라”라고도 했다.



박 부장판사는 지난 10월 A씨에 대한 공소장을 받았고, 그의 삶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보호관찰소에 판결 전 조사를 의뢰했다. 통상 피고인이 구속되면 가족이나 지인이 재판부에 탄원서 등을 제출하는데, A씨에 대해서는 그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경남 출신인 A씨는 부모가 사망한 뒤 30대 초반에 부산에서 노숙 생활을 시작했고, 지난 27년간 폐지나 고철 등을 모아 생활해 왔다. 휴대전화도 없고, 주민등록 호적도 말소될 정도로 철저히 고립된 생활을 해 왔다.

박 부장판사는 부산일보에 “A씨는 초범이고 피해자 역시 처벌을 원치 않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면 A씨가 달라질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고 전했다. 박 부장판사는 “법복을 입는 순간 스스로가 형사사법 절차이기 때문에 평소 엄격하게 재판을 진행하는데, 따뜻한 법관으로만 비칠까 걱정스럽다”며 “무명에 가깝던 사람이 법정에 선 순간 형벌과 함께 사회적 관심이 들어간다면 제2의 범죄에 휩쓸리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박 부장판사는 이번 판결이 미담으로만 다뤄지는 것도 꺼렸다고 한다. 그는 국제신문에 “일반인 같으면 구속되지 않을 사안이었으나 주거가 부정한 노숙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으로 구속된 사정이 안타까웠다”며 “절대 개인적인 미담으로 알려지는 것이 아니라 약자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 부장판사는 사회에 울림을 주는 판결문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지난 2019년 책 『어떤 양형 이유』를 낸 뒤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처럼 말했다.

“큰 바람은 없고 ‘판사들 이거 우리하고 영 딴 나라에 살면서 형편없는 인간들인 줄 알았는데 그래도 조금 봐줄 만하네’ 정도로만 읽혔으면 좋겠다. 다소 실망스러운 말이겠지만 판사도 똑같이 지질한 인간들이다. 하지만 엄청나게 큰 힘을 갖고 있어서 그 힘을 주체할 수 없어 쩔쩔매는 사람들이다. 가끔 당사자들의 ‘수고하셨다’는 다정한 말 한마디에 힘이 나서 밤새워 판결을 쓰고, 정말 어쩌다가 받는 감사의 편지 한 통에 남은 판사 생활이 달라지는 게 대한민국의 판사들 같다.”



임성빈(im.soungb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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