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100년 동안 잠든 간토대지진 기록
“공부는 죽어도 하기가 싫었어요. 매일 책만 봤어요. 그중에서도 제일 재밌는 게 역사책이었어요. 공부를 안 하니 수학 점수가 5점밖에 안 되니까 도쿄대는 그래서 못 갔어요. 하하하.” 휴대폰 너머로 호탕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대지진. 100년 전 9월, 6000명이 넘는 조선인이 학살당했다. ‘독에 우물을 풀었다’는 유언비어로 시작된 참극이었다. 하지만 이 참상을 일본 정부는 최근까지 부인했다. “기록이 없다”는 거였다.
이 자료는 어떻게 드러나게 된 걸까. 그는 “마치 약 100년 전 이 기록들이 읽어주길 기다린 것 같다”고 했다. 지난 2013년, 아시히신문 기자로 간토대지진 90년을 맞아 취재를 시작했다. 의문이 싹텄다. 왜, 조선인은 학살당했을까. 자료를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퇴근하고 돌아오면 매일매일 모아둔 자료를 읽었다. 옛 문서를 뒤져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자 한 글자를 풀어내는 데 며칠이 걸리는 일이 수두룩했다. 그러던 올여름, 간토대지진 100년을 맞아 강연해달란 연락이 왔다.
이왕 하는 발표니 뭐 새로운 건 없을까, 갖고 있던 자료를 뒤졌다. 그에 손에 들린 건, 2년 전 일본서 출간해 지난 8월 우리말로도 발간된 『관동대지진, 학살부정의 진상』에도 언급했던 자료였다. 너무 읽기 힘들어 그간 읽지 않았던 이 보고서에 매달렸고, 결국 세상 밖에 알려졌다. 그는 이 내용을 또다시 책으로 엮어낼 참이다.
오랜 시간, 그가 일본의 부(負)의 역사 기록들과 마주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확실히 밝혀내지 않으면 또 다시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어요. 이제 할 일은 이 자료에서 무엇을 해석하느냐고 봅니다. 거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현예(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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