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님 편히 쉬세요"…천호동 약국 가득 메운 눈물의 쪽지
“선생님 그곳에서 잘 지내시는지요. 선생님 계신 곳 주소 좀 알려주세요. 편지라도 보내고 싶어요”22일 오전 6시 55분, 서울 천호동 ‘동현약국’ 외벽엔 각양각색의 포스트잇 49개와 국화 한 송이가 붙어 있었다. 쪽지의 수신자는 1985년부터 부인과 함께 약국을 운영한 고(故) 김동겸 약사. 김씨가 지난달 말 수술 뒤 합병증으로 작고하면서 이곳 문도 굳게 닫혔다. 48평 남짓의 약국 내부에는 짐이 담긴 박스 한 개와 쓰레기봉투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삐뚤빼뚤한 어린아이의 글씨부터 예스러운 붓글씨까지, 주민들은 저마다 김씨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내려갔다. 동이 트기 전부터 이곳을 찾은 단골 안경희(62)씨는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건강을 지켜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의 쪽지를 벽에 붙이며 김씨에 대해 “등불 같은 분”이라고 회상했다. 안씨는 “김씨는 손님이 불필요한 약을 달라고 하면 ‘그건 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양심적인 약사였다”고 말했다. 약국의 유리 외벽에 붙은 포스트잇에는 ‘너무 가슴이 아프다’ ‘항상 비타민을 손에 쥐어주셨던 모습이 생생하다’는 내용의 쪽지가 가득했고, 국화꽃 한 송이도 붙어 있었다.
동네 주민들이 김씨를 떠올리며 가장 많이 쓴 단어는 ‘성실’과 ‘친절’이었다. 느린 걸음으로 비어 있는 약국 내부를 보던 구모(76)씨는 “오전 6~7시 무렵 문을 열고 오후 10시쯤 퇴근하던 A급 약사였다”며 “약사 내외가 모두 친절해 지역에 행사가 있으면 음료수도 나눠주곤 했다”고 말했다. 고인의 장례식장에 다녀온 인근 자영업자 이모(68)씨도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문 여는 약국이 없어서 이곳이 동네에서 인기가 많았다”고 증언했다. 천호동에 살고 있는 윤아연(29)씨도 “요즘 사람들 같지 않고 동네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약국 건물의 소유주였던 김씨는 손님뿐만 아니라 세입자에게도 친절한 건물주로 기억됐다. 약국 건물 사무실에 세를 들어 있는 정모(63)씨는 “말없이 웃음기 가득한 친절한 분이어서, 먼 곳에 있는 병원에 가더라도 일부러 이 약국에서 약을 처방받으러 오곤 했다”고 그를 기억했다.
김정은.김민정(kim.jeonge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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