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한 해를 보내며
아침 식사 도중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흘러나왔다. 딸 친구가 아빠의 임종을 앞두고 한국어를 할 수 있는 목사를 찾다 우리 남편을 생각했단다. 사랑하는 아빠를 떠나보내야 하는 딸의 마음이 다가와 숟가락을 내려놓고 서둘러 중환자실에 이르렀다. 구원받은 자녀로서 천국에 입성할 수 있도록 기도했다. 소망에 찬 메시지로 가족을 위로하고 나오며 한 해의 마지막에 다다른 내 모습을 보았다.
나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치 못해 속상하고 침체해 있었다. 평생을 열심히 달려왔는데 아직도 넘어야 할 많은 과제 앞에 아쉬움과 다급해지는 마음을 떨치기 힘들었다. ‘왜? 언제까지 단련을 받아야 하나?’ 부족한 자신과 함께 흔들거리는 늦가을의 나뭇잎이 겹쳐 비추어졌다.
코로나 팬데믹과 맞물려 남편이 신장 투석을 받아야 했기에 우리 내외는 은퇴했다. 평생 몸담았던 일들을 내려놓았다. 교육과 훈련을 받으며 제2의 커리어로 집에서 직접 신장 투석을 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남편의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 때문에 세 차례 수술 후 방법을 바꾸어야 했다. 혈액투석에서 복막 투석을 거쳐 홈혈액투석으로. 배, 가슴 캐티터에 이어 팔을 통해 한다. 그러기를 4년이 흘렀고 요즈음 마지막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남들은 3주면 만들어진다는 버튼홀이 석 달이 되어도 이루어질 기미가 없다. 팔뚝이 시퍼렇게 멍들고 혈관 주위가 딱딱해졌다. 있던 자신감마저 사라지고 두려울 뿐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라는 물음에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라 했다. 급하지만 순종하는 믿음으로 마음을 비워 모든 걸 맡기기로 한다. 어제는 딱딱했지만, 내일엔 부드러워져 주삿바늘이 들어가겠지. 여러 번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 통로가 만들어지리라. 태양은 내일 다시 뜬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뭇잎을 다 떨군 나무는 숨을 고르며 영양분을 저장하고 다음 해의 봄을 준비하고 있다.
이희숙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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