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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오는 길 가는 길, 금의환향 길

이기희

이기희

‘고향 십년 타관 십년 떠돌아 굽어 돌아 / 오는 길 가는 길에 청춘은 시들었네/ (중략) 구름 십년 물결 십년 세월은 흘러가고 / 울다가 웃어보면 주름은 깊어 가네 / 가신 님이 그리워서 몇 번이나 불렀느냐 / 주막집 처마 밑에 꿈길은 천리만리’ – 황국성 노래 ‘오는 길 가는 길’ 중에서.  
 
오는 길이 쉽지는 않지만 가는 길은 더 어렵다. 돌아가기는 정말 힘들다. 고향을 등질 때는 금의환향(錦衣還鄕) 해서 부모님 모시고 옛이야기 하며 오손도손 살리라 다짐한다.  
 
금의(錦衣)는 화려하게 수놓은 ‘비단옷’인데 출세의 상징이다.  
 
초한전쟁에 승리한 항우는 장안을 정복하고 함양에 입성해 진을 멸망시킨 뒤 고향 팽성으로 수도를 옮기려 한다. 한생이 만류하자 “부귀를 누리는데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비단옷 입고 밤에 돌아다니는 꼴과 같다”며 한생을 죽이고 팽성으로 천도한다. 이 일은 결국 유방에게 천하를 넘겨주는 계기가 되는데 ‘금의환향’은 출세해서 고향에 돌아간다는 뜻의 고사성어로 사용된다.  
 


인생은 두 갈래 길 사이에 존재한다. 세상에 제일 먼저 터트리는 울음 소리는 아기가 태어나는 기쁨의 소리다. 생명으로 우주를 숨쉬며 지구로 오는 길이다. 티끌만한 주저도 없이 이 풍진 세상으로 바람처럼 스며든다. 누구에게나 공평한 축복의 길이다. 세월이 폭풍과 천둥을 몰고 와 상처를 내고 할퀴고 멍들게 한다. 탐스럽던 두 볼에 금을 긋고 검은 머리칼에 싸락눈을 뿌린다.  
 
올해 99세로 긴 피부암 투병 끝에 호스피스 돌봄을 받는 카터 전 대통령이 28일 별세한 부인 로잘린 여사의 추모 예배에 참석했다. 77년 동안 든든한 버팀목이자 정치적 지원군이었던 아내를 보내고 생의 마지막을 준비한다. 카터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민간외교와 사회운동, 해비타트 사랑의 집 짓기 운동 등 활발한 사회 활동으로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카터 대통령 하면 제일 먼저 싱글러브 장군이 떠오른다. “5년 이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는 카터 대통령의 계획은 곧 전쟁의 길로 유도하는 오판”이라고 정면 비판했다가 본국으로 소환돼 전역 당했다. 장군은 주한미군 보급담당 사령관이던 리사 아빠의 직속 상관이다. 그의 반대가 계기가 돼 주한미군 철수 계획은 결국 백지화됐다.
 
전역 후 “주한미군 철수계획에 반대하지 않았다면, 별 몇 개를 더 달 수 있었을 텐데”라는 질문에 “내 별 몇 개를 수백만 명의 목숨과 바꿨다고 생각하면 그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라고 답했다. 용사는 죽지 않는다. 사라질 뿐이다. 싱글러브 장군은 ‘성공한 삶(Life of Success)과 의미 있는 삶(Life of Significance)’ 중에서 의미 있는 삶을 산 사람이다. 어쩌면 오는 길보다 가는 길이 더 중요한 지 모른다. 오는 길이 꽃길이라고 가는 길이 꽃길이 되진 않는다. 걸어온 길, 살아온 길이 험한 자갈밭이라 해도 가슴 속 꽃향기 품은 사람은 고통 속에서도 향기로운 삶을 산다.  
 
어머니는 고향 땅 양지바른 언덕에 묻히기를 바랬지만 우리 동네 공원 묘지에 모셨다. 내 유언장엔 장기기증 등록을 했으니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화장해서 경치 좋은 곳에 뿌려달라고 적었다. 올 때처럼 가볍게 빈 손으로 가면 바람의 무게를 견딜 수 있으리라.
 
달력 마지막 달 빈칸을 센다. 고향에 돌아갈 꿈을 접고 허무의 신발가게에서 성취한 모든 것들이 재가 된다 해도, 부귀영화의 꿈 내려놓으면 새날 새해는 좀 가벼워지지 않을까? 낙동강 구비 돌아 비슬산 참꽃 따다 입에 물고 접었던 날개 펴고 하늘 높이 솟아오르리. 사는 날들이 편안하고 무탈하면 금의환향, 마음은 늘 푸른 고향 땅에 둥지를 튼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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