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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어처구니에 대하여

정찬열 시인

정찬열 시인

“맷돌 손잡이가 뭔지 알아요? 어이라고 해요. 맷돌을 돌리다가 손잡이가 빠졌네, 그러면 일을 못하잖아. 이런 상황을 어이가 없다고 그래,  황당하잖아. 별것도 아닌 손잡이 때문에 해야 할 일을 못하니까. 지금 내 기분이 그래, 어이가 없네!”  
 
오래 전 본 영화, ‘베테랑’ 속 조태오의 명대사 중 하나다. ‘어이’의 어원이 맷돌 손잡이란 걸 영화를 보고 알게 된 사람이 많을 성싶다. 정확히는 ‘어처구니’이다.
 
지금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물건이 되었지만, 내 어릴 적 만해도 시골에서 맷돌은 없어선 안 될 생활 도구였다. 콩을 삶아 두부를 만들거나 곡식을 가루로 만들 때 맷돌이 필요했다.
 
돌로 만든 맷돌은 손잡이를 나무로 깎아 만들어 박아야 했다. 맷돌을 계속 돌리다 보면 나무가 닳아 어처구니가 빠져나가기 일쑤였다. 어이없는 상황이 되는 순간이다. 설을 앞두고 콩가루를 만들려고 어머니와 함께 맷돌을 돌리다가 어이가 빠져 버렸다. 오래 전 일이지만, 새 손잡이를 만들어 끼우는 동안 어지럽게 널려있던 방안 풍경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맷돌 사용 중 어이가 빠지면 만들어 끼우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우리네 삶 속에서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 파장이 만만치 않거나 감당해내기 쉽지 않다. 어처구니없다의 사전적 의미는 ‘일이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히는 듯하다’로 되어있다. 어떤 사안이나 행동이 상식을 벗어날 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최근 어떤 문학 단체에서 신인상 발표가 있었다. 그런데 제대로 된 공모절차도 없었고 심사위원 이름이나 심사평, 그리고 수상 소감도 없었다, 작가가 탄생하는 과정이 이렇게 허술해도 되는가 싶었고, 그렇게 얻은 작가라는 타이틀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주 문단의 품격을 스스로 실추시키는 현장을 보는 성싶어 마음이 아팠다. 이런 경우를 어처구니없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정직하지 못해 생겨난 일이다. 흔히 작가는 세상의 등불이라고 한다. 그렇다. 작가란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은 이야기,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다. 인간사의 부조리를 말하고 경고하는 사람이다. 작가는 정직해야 한다. 세상에 대해 바른 말을 할 수 있는 용기는 자신에 대한 당당함으로부터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작가가 생각하는 것에 대한 정직한 표현이다. 정직하지 못한 사람이 정직한 글을 쓸 수 있겠는가. 정직하지 못한 글은 감동에 이를 수 없다. 잠시 세상을 속일 수 있겠지만 머잖아 햇볕 아래 드러난다. 자신이 믿는 신 앞에 정직하게 무릎 꿇을 수 있는 사람만이 독자의 가슴을 울리는 글을 쓸 수 있다. 그런 글이 어두운 세상에 촛불이 된다.  
 
한 해가 저물어간다. 찬찬히 되돌아보니 어처구니없는 풍경 몇 장면이 스쳐지나간다. 모두가 상식을 지키지 않아 일어난 일이다. 말과 행동이 달라서, 정직하지 못해서, 생겨난 일들이었다. 새해는 어이없는 일을 덜 보는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정찬열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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