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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과 만났다] 그리고 봄 -조선희

‘대통령 선거 이후 1년, 상실과 혐오로 해체되었던 4인 4각 가정사 봉합기’…. 책 뒷커버에 이렇게 그 주제를 적어 놓은 이 책은, 노벨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의 소설 ‘내 이름은빨강’처럼 다자 초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가족구성원 네 사람, 엄마, 아빠, 딸, 아들의 입장에서 각각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아무런 정보 없이 읽기 시작했다면 30, 40대 젊은 작가가 쓴 줄 착각할 만큼, 전개가 빠르고 가볍다. 1920년대 여성 혁명가들의 인생을 다룬 ‘세 여자’를 쓴 작가가 맞나 싶을 만큼 소재도 시대 친화적이어서, 이렇게나 다양한 측면에서 빠르게 세상에 스며들어 그 속을 들여다보고 계셨구나!저으기 놀라면서 책을 읽어 내려갔다. 시작 부분 젊은이들의 방황 이야기를 읽다 보니, 올해 영화 평론가들이 최고의 한국영화로 선정한 ‘다음 소희’라는 영화가 오버랩되기도 했다. 비열한 비양심의 끝판왕 어른들의 세계에 눌려 삶을 놓아버린 어린 청춘을 보며 나도 몰래 눈물이 흘렀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가족구성원 각자에게 드리워진 사회의 그늘이 아픈 눈물로 번지려나 다소 조바심이 일었다. 그러나, 이 책은 다행히도 달달한 맛이 살짝 섞인 건강한 눈물 한소끔이 있는 소설이었다.
 
동성애자에 대한 다분히 보수적인 시선의 나에게는 상당히 거북한 주인공 동성애자 딸 ‘하민’이 튀르키에 여자와 국제결혼을 하겠다고 엄마 ‘정희’에게 폭탄선언을 하는 내용. 또한, 입사지원서를 100번 쓰고 지친 아들 ‘동민’이 말다툼 끝에 기타 하나 달랑 메고 가출을 한 채, 한 방에 훅 뜨기를 꿈꾸며 삼인조 밴드의 가난하고 불투명한 생활을 하는 이야기가 쭉 이어질 때, 내가 이 소설을 잘 따라갈 수 있을지 요즈음의 트렌드에 너무 어두운 나를 책망하면서 지극히 수동적인 자세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나이 서른에 정해진 것 하나 없이 사라져가는 젊음 속에서 꿈과 현실 사이를 방황하는 동민이 그 틈을 어떻게 좁혀가는지를 읽으면서 또래의 내 아들이 세상과 마주하며 겪었을 고민이 교차하여 눈시울이 뜨거워졌고, 동성애자 하민의 삶의 해법을 보며, 요즈음 주변에 턱없이 늘어나는 동성애자들을 한 번쯤은 세심히 들여다봐야 하지 않는지 숙제를 받아 안은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네 번째 장, 1959년생인 아버지 ‘영한’의 이야기에서는 한자도 놓치고 싶지 않을 만큼 엄청난 몰입감이 일었다. 이 네 번째 장으로 이 책은 그 역할을 다했다고 할까. 뭔지 온몸에 가득 채워지는 플러스에너지.  
 


삶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육체와 정신의 노쇠, 죽음에 대한 예감을 강건하고도 유머러스한 글과 드로잉으로 담은 양철북의 작가 귄터 글라스의 ‘유한함에 관하여’가 수필 형식의 위로와 해법서라면, ‘그리고 봄’의 4장은 소설로 된 해법서라고나 할까. 씨네 21 편집장과 한국영상자료원장을 지낸 소양일는지, 영화와 문화 전반에 관한 넘치고 빛나는 일련의 예들은 선물로 받은 듯, 밑줄 그어두고 하나씩 찾아보고 싶게 했다. 지극히 가볍게 트렌디한 세상을 훑는 듯 시작하지만, 이 4장의 저력으로, 세대 간 사고의 차이나 코로나19로 조각난 젊은이들의 한숨과 아버지의 갱년기 슬럼프를 단번에 돌아보게 한다. 우리의 유한성을 딛고 일어나 오늘 내게 할당된 의미 한 부분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채우기로 하자를 표표히 일게 했다.
 
내 삶의 최애 가치인 ‘역지사지’. 틱낫한 스님의 책, ‘마음에는 평화, 얼굴에는 미소’에서 배운 ‘차를 마실 때는 차만 생각하자’는 책 속 캐치프레이즈도 반가웠다.
 
우리 다음 세대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정치적 잉여뉴스로 받는 이 엄청난 스트레스는 어찌해야 할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광고카피가 완전히 틀렸음을 날마다 절감하는 인생 후반기에서 그 의미를 찾지 못해 서성인다면, 가족 간의 끈끈함이 얼마나 당연하고도 고마운 현실인지를 뭉근히 느끼면서 이 책에서 답을 찾아보시기를 권해드린다.

박영숙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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