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개월 만에 문 연다…백령도 산부인과 나타난 70대 구세주
산부인과 전문의 오혜숙(73)씨는 부끄러운 듯 말을 아꼈다. 오씨는 2년 8개월간 비어있던 서해 최북단 백령도의 백령병원 산부인과 과장에 최근 자원했다. 서울 사당동에서 지난달까지 동네 산부인과를 운영하다가 70대에 접어들어 200㎞나 떨어진 외딴 타지로 떠나는 것이지만, 오씨는 “대단한 일이 아니다”라며 외려 쑥스러워했다.
육지와 멀리 떨어진 만큼 산부인과 의사 구하기가 늘 만만치 않았다. 2001년 개원 이후, 봉직의가 근무한 건 2015년 7월부터 약 1년 간이 전부다. 나머지 기간은 취약지역 보건소 등에서 군 복무를 대신하는 공중보건의(공보의)가 산부인과 진료를 봤다. 그나마 2021년 4월 근무하던 공보의가 근무지 변경을 신청해 백령도를 떠난 뒤엔 이마저도 끊겼다. 이때부터 산부인과는 사실상 휴업 상태가 됐다.
그 사이 백령도에선 임산부 27명이 출산했다. 지난해 7월에는 닥터헬기를 타고 인천 가천대 길병원으로 응급이송된 위기 산모도 있었다. 이두익 백령병원장은 “의료취약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공보의를 먼저 뽑고 군의관을 뽑아달라고 인천시, 복지부, 국회 등에 요청하기도 했다”며 “산부인과 의사 등이 필요하니 인천 섬 지역에 공보의 숫자를 늘려달라고 했지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32개월에 걸친 구인난과 산부인과 공백은 오혜숙씨의 등장으로 간신히 풀렸다. 2001년 백령병원에서 산부인과 공보의로 일했던 의사가 의료계 종사자들에게 백령도 사정을 알렸는데, 오씨가 우연히 소식을 접한 뒤 선뜻 백령도행을 자원했다. 오씨는 지난달 이두익 원장과 면담 뒤 “백령병원은 내가 필요한 곳”이란 생각을 굳혔다고 한다. 간호조무사 출신인 오씨의 동생도 함께 백령도로 떠나기로 했다. 오씨의 아들 박민선(46)씨는 “어머니가 ‘언젠가 보건소든 섬이든 필요한 곳에서 의료봉사를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연로하셔서 걱정도 됐지만 오랜 꿈이셨으니 응원해드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오씨는 지난해 모교인 이화여대 의대에 사후 시신 기증도 약속했다.
심석용(shim.seok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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