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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부인 자리 세웠다…취임식 연 '아르헨 트럼프' 문고리 권력

아르헨티나의 새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왼쪽)과 그의 여동생 카리나 밀레이가 10일(현지시간)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취임식 퍼레이드에서 오픈카를 타고 행진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르헨티나의 괴짜 대통령 하비에르 밀레이(53)가 10일(현지시간) 취임식을 열고 4년 임기를 시작했다.

라나시온 등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밀레이 대통령의 취임 첫날은 파격의 연속이었다. 그는 이날 오전 11시 30분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연방 의회에서 취임 선서를 한 뒤 전임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의 상징인 어깨띠와 지팡이(홀)를 건네받았다.

이어 밀레이 대통령은 의회 밖 광장으로 나와 연설을 했다. 아르헨티나에선 군부 독재(1976~1983년)가 끝난 이후 신임 대통령이 의회에서 취임 연설을 해왔다. ‘정치 아웃사이더’인 밀레이는 40년 만에 이런 관습을 깼다.

의회 대신 광장서 “아르헨티나 재탄생”
그는 광장 연설에서 “어떤 정부도 우리보다 더 나쁜 유산을 물려받은 적은 없었다”면서 “재정·대외 수출에서 쌍둥이 흑자를 자랑했던 아르헨티나는 현재 국내총생산(GDP)의 17%에 달하는 쌍둥이 적자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연간 물가상승률 1만 5000%를 겪을 위기에 있으며, GDP의 5%에 대한 국가 부문의 재정 조정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궁인 로사 카사다에 도착한 뒤에도 “포퓰리즘의 밤이 끝나고 번영하고 자유주의적인 아르헨티나의 재탄생”이라고 연설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취임 첫 행보로 ‘1호 긴급 법안(DNU)’을 통해 부처를 통폐합하고, 장관도 속전속결로 임명했다. DNU는 긴급한 사안에 대해 의회 입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대통령이 직권으로 입법하는 절차다. 이를 통해 현재까지 18개였던 부처를 외교·국방·보건·인적자원부 등 9개로 줄였다. 기존의 사회 개발·교육·노동·여성인권·문화부는 이들 부처로 기능이 흡수 통합됐다.

현지 일간 라나시온에 따르면 내각을 총 지휘하는 수석장관에는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측근 니콜라스 포세가 임명됐다. 경제부 장관에는 취임 전 방미길에 동행한 루이스 카푸토 전 재무장관, 안보장관에는 선거 막판 지지 선언으로 밀레이에 힘을 실어준 패트리샤 불리치 전 안보장관이 재차 임명됐다. 카푸토·불리치는 2015년 친기업 우파 성향 마우리시오 마크리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정통 관료 출신이다.

밀레이 대통령은 표면적으로는 “충격 요법 외에는 답이 없다”며 재차 급진적인 개혁을 약속했지만, 신임 내각 명단에 밀레이의 ‘페소(아르헨티나 화폐)·달러 대체 공약’을 집필한 에밀리오 오캄포 세마대 교수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현지 매체들은 “‘중앙은행 폭파, 달러 도입’과 같은 극단 처방이 당장 도입되진 않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밀레이의 취임식에 참석한 우크라이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오른쪽)이 10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통령실에서 밀레이 대통령, 여동생 카리나와 인사하고 있다. UPI=연합뉴스

여동생, 영부인·비서실장 겸할 듯
취임식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독신남인 밀레이의 유일한 피붙이나 다름 없는 여동생 카리나(51) 밀레이였다. 밀레이 대통령은 이날 의회에서 대통령궁 ‘카사 로사다’로 향하는 카퍼레이드에서 여동생 카리나 밀레이를 영부인 자리에 세웠다. 두 남매는 오픈카 위에 나란히 서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대통령궁으로 입성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이어 대통령실 사무를 총괄하는 비서실장(장관급) 자리에 여동생 카리나를 임명했다. 이를 위해 2018년 도입한 ‘대통령의 직계, 형제자매 등 친족의 부통령과 장관 등 고위 공직자 임명 금지’ 법령도 긴급 법안으로 개정했다. 현지 매체 암비토는 “밀레이가 여동생을 총괄 비서관에 임명하면서 밀레이가 감정에 북받쳐 목소리가 크게 떨렸다”고 전했다.

밀레이는 과거 카리나를 “외로웠던 청소년기 때부터 유일한 친구”라고 말한 적이 있다. 대선 기간엔 밀레이 대통령이 “나의 보스”라고 부르는 등 공·사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인물이다.

카리나는 이날 취임식에 참석한 외국 정상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밀레이의 첫 정상회담에도 배석했다. “카리나가 새 정부에서 영부인이자 비서실장의 역할을 오가는 최대 문고리 권력이 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이번 취임식에는 젤렌스키 대통령 외에도 브라질의 극우 성향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도 참석했다. 밀레이 대통령은 의회 방명록에 자신의 선거 구호였던 “자유 만세, 망할”이라고 적었다. 밀레이 대통령이 취임식 때 건네받은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홀도 새로 제작됐다. 밀레이가 평소 “네 발 달린 자식들”이라고 불러온 다섯 마리의 복제견의 모습이 새겨졌다.



이유정(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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