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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없이 통신내용 수집”…美 '해외정보감시법' 올해로 끝나나

지난 2013년 미국 워싱턴의 연방의회의사당 앞에서 정부의 정보 수집 활동을 비판하려는 개인 정보보호 활동가들이 헌법 가치를 지키고 정보수집을 멈추라는 문구가 담긴 플래카드를 걸어놓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미국 정보당국은 내년에도 미국 밖에서 영장 없이 외국인을 도·감청할 수 있을까. 해당 행위의 근거가 되는 미 해외정보감시법(FISA) 702조의 효력이 올해 말 사라질 예정이어서, 조항 재승인 여부를 놓고 미 정치권이 진통을 겪고 있다. 이와 관련, 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테러 방지와 중국·러시아 견제 등을 위해 이 조항 효력을 연장해야 한다는 조 바이든 행정부와 미국의인 자유 침해와 사찰을 우려하는 미 의회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크리스토퍼 레이 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은 지난 5일 상원 청문회에 출석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영향으로 최근 미국 본토의 테러 위험이 ‘새로운 차원’으로 고조됐다”며 “테러리스트 그룹이 미국을 겨냥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FBI의 702조 권한을 박탈하는 것은 일방적인 무장 해제가 될 수 있다”며 702조의 연장 필요성을 강조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지난 7월 “702조로 획득한 정보 덕분에 미국은 중국이 제기하는 위협에 대응하고,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의 잔혹 행위에 맞서 전 세계를 결집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702조는 지난 2008년 해외 테러 등 안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제정됐다. FBI를 비롯해 국가안보국(NSA), 중앙정보국(CIA) 등 미 정보·수사당국이 의심 가는 해외의 외국인이나 기관, 정부의 통화·문자메시지·메신저·e메일 등 통신 내용을 구글·애플 같은 미 정보기술(IT) 기업과 통신사에서 영장 없이 수집할 수 있게 하는 게 골자다.

정보 수집 대상 외국인이 미국인과 연락했을 경우 해당 미국인의 통신 내용도 수집할 수 있다. 수집을 위해선 ‘비밀 법원’이라고 불리는 외국정보감시법원(FISC)의 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하지만 미국인만을 상대로 한 감청보다 훨씬 허가를 받기도 쉽고 그 대상 범위도 넓다. WSJ은 “702조는 미 정보기관들이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감시 도구 중 하나로 꼽힌다”며 “매일 대통령에게 보고되는 정보의 절반 이상이 이 조항을 통해 수집된 것”이라고 전했다.

지난 5일 크리스토퍼 레이 미국 연방수사국(FBI) 국장이 미 상원 청문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외국인의 통신 내용을 수집하면서 이들과 접촉한 미국인 자료도 함께 모은다는 점이 논란이 돼 왔다. 영장 없는 부당한 압수수색을 금지하는 미 수정헌법 4조를 위반했다는 지적 때문이다. 지난 2018년 한 차례 재승인된 702조는 의회가 올해 연말까지 재승인을 하지 않으면 일몰 조항에 따라 효력이 만료된다.

702조의 운명을 결정하는 미 의회는 초당적인 지지를 보였던 법 제정 초기와 달리, 현재는 재승인 반대 의견이 우세한 상황이다. 국가안보 차원에서 이 조항을 지지했던 공화당에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FBI의 수사 이후 미 당국의 정부수집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의원들이 많아졌다. 민주당에서도 미국 시민의 개인정보 침해를 막으려면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민주당 소속인 딕 더빈 상원 법사위원장은 지난 6월 “702조에 중대한 개혁이 있을 경우에만 재승인을 지지하겠다”라고 밝혔다.

일단 의회는 702조의 효력을 내년 4월까지 연장하는 내용을 내년에 시행될 국방수권법안(NDAA)에 포함했다. 이르면 다음 주 NDAA가 표결에서 통과될 경우 의회는 702조의 재승인이나 일부 개정 또는 폐기 여부를 결정할 시간을 조금 벌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이후 재승인 여부는 불투명하다. 702조가 규정하는 (도·감청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다는 양당 의원들의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702조가 마지막으로 재승인됐던 2018년에도 상·하원 의원 3분의 1 정도가 반대표를 던졌다. 이에 미 행정부가 론 와이든(민주·오리건) 상원의원 등이 내놓은 보호 조항을 추가해 702조의 재승인 개정안을 받아들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와이든 의원 등은 "702조를 4년 더 연장하되, 미국인 관련 데이터 수집 시 법원의 승인을 거치도록 하는 ‘가드레일’ 조항을 추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승호(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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