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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거북이 길찿기

이기희

이기희

쭉쭉빵방 늘씬하지도 않으며 얼굴이 크게 예쁘지도 않다, 삼거리 시골 동네에서 태어나 홀어머니 손에서 촌뜨기로 자랐다. 지방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며 여류시인이 되길 꿈꾼다. 이쯤 요약하면 좋은 직장 얻어 성공하기는커녕 부잣집 맏며느리 될 확률도 낮다. 앞날이 꽃길이 아니라 가시밭길로 걷게 될 조짐이 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 마음은 한결같다. 자식은 잘났건 못났건 가장 값진 보석이다. 딸의 교육을 위해 아늑한 시골 생활 접고 도시로 이사했다. 어머니는 일제 때 초등학교 문 앞에도 가지 못했지만 딸 등 너머로 글을 익혀 사자성어까지 구사하는 능력자다.
 
당신 딸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어머니는 딸이 판사나 의사, 교수가 되길 원했다. 아니면 의사나 판사, 교수와 결혼하길 바랬다. 내 실력을 파악 못한 주문이지만 대신 세계적인 여류시인이 돼 가문의 영광으로 보답하리라 다짐했다. 소중한 사람의 믿음만큼 인생의 든든한 발판이 되는 것은 없다.
 
부익부 빈익빈, 금수저 은수저는 어느 시절 어디서던 엄연히 존재한다. 나의 청년시절은 지금처럼 ‘스펙’이란 말로 인간 자체를 평가하지 않았다. 스펙은 경쟁에서 타인과 비교할 만한, 학력, 학점 등의 능력치를 의미하는 단어다.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지만 연애나 결혼 등 인생의 모든 영역에 올가미로 적용된다.  
 
예전에는 개천에서 더러 용이 나기도 했다. 내가 살던 도시에서 김원일선생과 이문열씨는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소설가로 성공한 대표주자다.  
 
가진 것 없고 능력이 모자라도 언젠가 하늘 높이 승천할 수 있는 꿈을 갖는다는 것은 얼마나 낭만적이고 멋있는 일인가. 세계적인 여류시인이 되겠다는 꿈은 높고 푸르렀다.  
 
빠른 토끼와 느린 거북이 경주를 시작한다. 시작부터 승부가 결정 난 것처럼 보인다. 토끼는 경주 도중 당근도 먹고 낮잠도 쿨쿨 잔다. 거북이는 느리지만 꾸준히 걸었기 때문에 빨라도 끈기 없는 토끼를 이긴다는 이솝우화는 다분히 교육적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그림책 작가 와일드 스미스는 ‘토끼를 이긴 거북이가 정말 과연 행복했을까’라는 질문을 ‘슈퍼 거북’에서 던진다. 잘난 체하는 토끼의 코를 납작하게 만든 거북은 유명인사로 칭송받는다. ‘슈퍼스타’가 되었지만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빨라지는 방법을 찿아 헤맨다. 거북은 주변의 지나친 관심에 자신의 본 모습을 잃어버린다. 나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돌아 보게 하는 대목이다.    
 
스스로를 지키는 자신감을 제외한 잠재력이나 주장은 스펙이 될 수 없다. 스펙은 인간의 본질을 논의하지 않는다. 스펙의 오류는 실력과 상관없는 나이, 부모나 가족, 사회적 위치, 집안, 부의 축적 등을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길을 찿으려면, 나는 핸드폰을 가장 먼저 켜고 위치를 살핀다. 쇠똥구리는 별을 보고 길을 찾는다. 쇠똥구리는 은하수뿐 아니라 달과 태양을 보고도 길을 찾는다. 시력은 안 좋지만 먼 빛을 정확하게 판별하는데 스냅사진을 찍듯 은하수를 기준점 삼아 자신의 출발 위치를 두뇌에 기록한다. 쇠똥구리는 하늘의 점을 기억하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출발점을 잘 기억하면 원래 위치로 돌아가기가 수월하다.
 
하늘 올려다 본 적이 언제였던가. 돌아가는 길을 잃어버린 날들이 무시로 흔들린다.

 
인생은 거북이의 길찿기다. 하늘을 올려보지 못하고 땅만 보고 힘들게 길을 찿는다. 단단하고 무거운 갑옷으로 무장하고 보이지 않는 내일의 길을 간다. 거북이는 거북이답게 토끼는 토끼답게,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지키는 것이 행복의 길찿기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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