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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게손 논란이 페미니즘 검증이라고? 본질은 '혐오밈' 의혹이다 [박가분이 소리내다]

메이플스토리 내 캐릭터에서 남성 혐오를 의미하는 손동작이 사용됐다는 의혹이 커지자 게임사가 사과를 했다. 하지만 여성계에선 일부 사용자가 억지 논란을 일으켜 페미니즘 사상 검증을 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얼마 전 메이플스토리라는 유명 게임의 캐릭터 애니메이션에서 남성혐오를 의미하는 손동작이 사용되었다는 의혹이 퍼졌다. 실제로 원화 단계에서부터 전체 캐릭터 모션(motion)과 맞지 않은 어색한 손동작이 대거 발견됐고, 문제의 영상이 특정 스튜디오 업체에서 집중적으로 제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게이머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이에 지난달 26일 메이플스토리 게임 담당자가 ‘혐오 문화에 반대한다’며 의혹이 있는 영상을 전수조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으며, 게임사인 넥슨코리아도 홈페이지에 사과글을 올렸다.
의혹의 당사자인 하청 스튜디오는 게임 내 혐오 표현을 삽입했다는 의혹을 부인하다가 뒤늦게 이를 시인하는 사과문을 올린 후 이를 다시 삭제하는 등 오락가락 행보를 보였다. 게이머들은 정황상 남성혐오 '밈(meme)'이 사용됐다는 것을 확신하는 분위기이다. 밈이란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는 생각이나 스타일, 행동 따위를 말한다.

지난달 30일엔 논란이 되는 ‘일부’ 집게 손가락 장면을 ‘남성’이 그렸다는 스튜디오 측의 해명이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보도됐다. 하지만 이는 애초에 논란이 되었던 다른 핵심 장면들에 대한 해명이 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는 점 때문에 여전히 논란은 지속하고 있다. 더군다나 혐오 표현 의혹에 대한 게이머의 반발을 ‘남성’과 ‘여성’ 간의 성별 대립으로 몰고 가려는 일부 움직임에 대해 게임계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대체 이 논란이 어떤 맥락에서 나왔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논란이 된 손동작은 남성혐오 인터넷 커뮤니티인 메갈리아·워마드에서 한국 남성의 특정 신체 부위가 작다는 조롱성 메시지를 담아 사이트 로고에 쓴 것에서 비롯됐다. 이후에도 일부 SNS와 여초커뮤니티에서 밈으로 유행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태는 과거 ‘일간베스트(일베)’가 일으킨 혐오 논란과 유사하다. 일베 역시 고 노무현 대통령을 조롱하는 악의적 합성물이라든지 일베 초성어 ‘ㅇㅂ’를 나타내는 손동작을 유포하는 등 혐오 문화를 인터넷 밈으로 확산시켰다는 점에서 메갈리아·워마드의 원조 격이다.

이러한 일베 발(發) 논란이 점입가경에 이른 것은 2014~2015년으로 공중파 방송 자료화면에 누군가 일베밈을 교묘하게 숨겨놓은 것이 잇달아 네티즌에게 발각된 일이 있었다. 전에도 남혐 문화에 경도된 일부가 일베와 유사한 방식으로 남혐 밈을 공식 게임 콘텐트와 기업 홍보자료에 숨겨 놓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었다.

혹자는 이번 사태를 게임계의 페미니즘 사상검열 논란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실제 문제의 본질은 혐오성 밈을 타인과 협업하는 콘텐트에 무단으로 집어넣는 일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직업윤리 상 비난받을만한 행동이며, 그런 행위를 한 외주 업체나 작가의 작품을 게임 콘텐트 내에서 폐기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사회 상규 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기업 입장에서도 대중적 비난과 불매운동으로 인한 매출 상의 불이익을 감내해야 할 이유는 없다. 물론 사안별로 ‘현업에서 논란을 일으켰는가’‘실제로 남혐 밈을 사용한 정황이 있는가’‘계약 당사자에게 중대한 금전적 손해를 가했는가’등을 구체적으로 따질 필요는 있다.

이번 사태에서 분명히 볼 수 있는 것은 시장에서 실질적 구매력을 행사하는 집단이 인터넷 혐오밈을 그대로 보고 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날 메갈리아밈이든 일베밈이든 혐오밈을 게임에 ‘묻히는’ 것은 게이머들이 용인하지 않는다. 설사 게임사가 용인한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보이콧의 대상이 된다. 이것은 이미 수년 전부터 업계의 불문율로 자리 잡았다. 메이플스토리라는 유명 게임을 운영하는 대기업 정도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기 때문에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으로 발 빠르게 대처한 것이다.

앞서 말했듯 이번 사건의 성격을 ‘페미니즘 사상에 대한 시비’의 문제로 곡해하는 사람들은 사안의 본질을 흐리고 있다. 이 사건의 진정한 쟁점은 페미니즘 사상에 대한 찬반이나 호불호가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혐오문화에서 파생된 밈이 실제로 사용됐냐이다. 여가에 남녀노소 마음 편히 즐기라고 만드는 게임에 일베나 메갈의 손동작 밈을 굳이 콘텐트에 몰래 집어넣겠다는 ‘음습함’에 대한 대중의 정서적 반감이 이번 논란의 기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일베가 반사회적 혐오집단’이라는 관점이 상식이 되다 보니 일베를 비난한다고 해서 아무도 보수주의나 우파 사상을 비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메갈리아·워마드에 대해서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남성혐오 밈에 대한 반발을 그 자체로 페미니즘에 대한 비판으로 간주할 필요는 없다. 이번 사태를 ‘페미니즘에 대한 사상검열’이라고 강변하는 사람들은 ‘메갈리아=페미니즘’이라는 일부의 통념을 재확인하고 있을 뿐이다.

페미니즘에 대한 찬동이든 비판이든 게임계 노동자 각자가 지닌 사상을 존중하되, 혐오문화 근절을 위해 정치권과 언론계가 다 같은 목소리를 내길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

박가분 작가

※〈소리내다〉는 다양한 의견을 담아내는 소통 공간입니다. 위 견해에 반대하는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의 ‘집게손이 남성혐오라는 그들만의 집단 착각’이 다음 편에 게재됩니다.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가분(th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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