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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나는 왕이로소이다

김지영 변호사

김지영 변호사

‘밤 하늘의 별도 그에게는 총맞은 상처. 그것도 총알이 들어간 자리가 아니라 빠져나온 자리. 너덜너덜 찢긴 살점이 별의 빛의 갈라져서 반짝거리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그의 첫 시집 제목은 ‘사출 (射出) 상처가 있는 밤 하늘(Night Sky With Exit Wounds)’이다. 그의 이름은 ‘큰바다’.  엄마가 지어주었다. 쫓겨난 조국과 피난 온 이국 사이의 큰 바다.  아들의 꿈이 그만큼 장대하기를 바랐을 터이다. ‘큰바다’는 미국의 시민이 되고 시인이 된다. 미국의 언어로 엄마 그리고 할머니가 겪었던 전쟁의 기억을 그린다.
 
큰바다가 한 살 때 할머니와 엄마는 생존의 위협을 느낀다. 베트남에선 1990년 때 까지도 미국은 적국이었다. 엄마의 아버지는 미국인. 엄마는 전쟁 때문에 태어난 혼혈아.  그것이 공산 베트남 당국이 그들을 박해할 빌미가 됐다. 그래서 전 가족이 베트남을 탈출한다.  
 
필리핀 난민 수용소에서 발이 묶인다. 15년간 소식이 없던 할머니의 미국 남편이 스폰서를 해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에 정착한다. 그 때까지 지니고 있던 할머니의 결혼증명서 덕분에 할머니의 남편과 연락이 되었던 터이다.
 


큰바다는 할머니와 어머니 품에서 자란다. 온 가족이 네일 살롱 비즈니스에 매달린다. 할머니는 이미 조현병 환자, 어머니도 어린 시절 겪은 전장의 공포 때문에 가끔씩 환청·환각에 시달린다. 큰바다는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집에서는 베트남말만 하기 때문에 11살이 될 때까지 영어를 제대로 못한다.  
 
그가 14살이 되었을 때 여름, 하트포드 교외 담배 농장에서 일을 한다. 거기서 두 살 많은 백인 남자를 만난다. 인생의 봄, 은밀한 사연이 생긴다.  
 
큰바다는 엄마에게 비밀을 털어놓는다. “엄마, 나 여자는 안 좋아해.” 엄마는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녀가 간직했던 가족사의 비밀을 아들에게 말해준다. “네가 할아버지라고 가끔씩 찾아가는 그 사람 사실은 내 아버지가 아니야.” 할머니의 서류상 남편인 그 백인 할아버지, 그가 할머니와 결혼한 것은 맞지만, 결혼 당시 할머니는 이미 임신 4개월. 농사꾼이었던 할머니는 다른 미군 병사에게 강간을 당했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큰바다가 쓴 자전적 소설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화려하지(On Earth We’re Briefly Gorgeous)’에 나온다. 소설이 출간된 2019년 큰바다는 미국 문단의 천재 작가로 우뚝 선다. 그해에 엄마가 숨진다. 그 슬픔을 2022년 ‘시간은 어머니이다(Time is a Mother)’라는 시집에 담는다. 영어를 못하는 엄마가 어렵게 찾은 단어 ‘오션(Ocean)’이 그의 이름. 성은 왕(王)자의 베트남어 발음인 ‘Vuong’.
 
‘Ocean Vuong’은 홍사용의 싯귀가 딱 들어 맞는 인생이다. ‘어머님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십왕전(十王殿)에서도 쫓기어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
 
울음기가 밴 약간 여성스러운 그의 목소리. 이 시대 최고의 영어권 문인. 그는 현재 뉴욕대학의 현대 시학 교수로 있다.  

김지영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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