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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처리 시한 넘긴 ‘657조’ 예산안…야당 몽니에 12월 통과 험난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서삼석 위원장(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4년 예산안 처리가 국회 여야 정쟁에 가로막혔다. 내년에 쓸 돈을 정확하게 정하지 못한 채 새해를 맞을 수 있다. 해마다 반복하는 예산 ‘늑장 처리’ 관행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획재정부가 편성한 내년 예산은 656조9000억원 규모다. 역대 최대지만 지출 증가율은 올해 대비 2.8%에 그쳤다. 재정 통계를 정비한 2005년 이후 증가 폭이 가장 낮을 정도로 허리띠를 바짝 졸라맸다. 쓸데없는 예산을 늘리지 않았는지, 꼭 필요한 예산을 줄이지 않았는지 ‘현미경 검증’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박경민 기자
하지만 예산을 심사해야 할 국회는 국회법에 따른 2024년 예산안 심사 종료 시한(11월 30일)을 넘겼다. 당연히 헌법이 내년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의결하도록 한 예산안 마감 시한(12월 2일)도 지키지 못했다. 정기국회 회기 종료일(12월 9일)이 예산안 협상의 ‘마지노선’으로 언급되지만 여야 정쟁으로 이마저도 넘길 가능성이 높다. 예산 통과가 미뤄지면 신년 사업을 시작해야 할 수많은 정부 부처가 준(準) 예산을 편성해 움직여야 한다. 연초부터 신규 사업은 할 수 없고 고정비만 지출해야 한다.

여야는 지난달 13~24일 예산안 조정 소위원회를 가동해 예산을 심사했다. 하지만 일부 감액 심사만 마쳤을 뿐 증액 심사는 손도 대지 못했다. 이후 27일부터 예산결산특별위원장과 여야 간사로 이뤄진 이른바 ‘소(小)소위’에서 심사를 이어 갔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박경민 기자
최대 쟁점은 연구개발(R&D) 예산이다. 정부가 ‘나눠먹기’식 요소가 있다며 올해 대비 5조2000억원(16.6%) 삭감한 R&D 예산을 야당이 지난달 14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예산안 심사 소위에서 원안보다 8000억원 늘려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여당이 이공계 R&D 장학금 지원을 늘리는 등 보완 방침을 밝혔지만, 야당은 최소 1조5000억원 이상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무부·감사원 등 사정 기관의 특수활동비 규모를 놓고도 여야가 팽팽히 맞선다. 야당은 검찰 특활비(80억9000만원), 감사원 특활비(15억1900만원) 감액을 요구하고 있다. 또 정부는 원자력 발전 관련 예산을 올해 대비 2400억원 늘리고 신재생에너지 예산을 6000억원 줄였다. 하지만 야당은 원전 예산을 1831억원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는 4501억원 증액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밖에도 정부가 전액 삭감한 예산과 관련 야당은 ▶새만금 신항 건설 2902억원, 새만금고속도로 1472억원 등 증액 ▶일명 ‘이재명표’ 예산으로 불리는 지역화폐 예산(7053억원) 복원, 청년 패스 예산(2923억원 등)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헌법 제57조는 ‘국회는 정부 동의 없이 정부가 제출한 지출예산 각항의 금액을 증가하거나 새 비목을 설치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정부가 예산 증액을 거부할 경우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없는데도 야당이 '몽니'를 부리고 있다는 의미다.

김형준 배재대(정치학) 석좌교수는 “정부의 방만한 예산 편성을 견제하는 건 국회의 의무다. 하지만 야당은 정부 예산을 일방적으로 칼질하고, 이재명표 예산은 대폭 늘렸다”며 “정부 주요 정책과 관련한 예산을 최소한 협의도 없이 통째로 칼질하는 건 발목잡기로밖에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2024년도 전체 예산안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기획재정부]
국회 예산안 통과가 늦어지면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한 재정 ‘조기 집행’에 차질이 불가피하다. 경기 부양 수단이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정부 예산을 앞당겨 집행하는 건 핵심 경기부양책 중 하나다. 홍성걸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예산과 부수 법안을 함께 통과시켜야 하는데 예산 통과가 미뤄지면 지출 계획을 새로 짜야 해 효율성이 떨어진다”며 “정부 예산 의무 지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지방자치단체·지방교육청은 내년이 돼야 최종 예산을 심의·의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늑장 예산 심사는 연례행사다. 여야는 상습 지각 처리 폐해를 개선하고자 2014년 ‘국회선진화법’을 만들어 예산안 자동 본회의 부의(附議) 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법정 처리 기한을 지킨 건 2014년과 2020년 두 번뿐이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국회 예결특위부터 상임위원회로 바꿔야 한다”며“상임위가 일상적으로 예산을 감시하고 전문성을 쌓도록 해 예산 심사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김기환(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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