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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의상감독 "사극 3~4작품 시간 쏟아, 해외 팬들도'볼끼' 물어봐요"[인터뷰](종합)

[사진]OSEN DB.

[사진]OSEN DB.


[OSEN=연휘선 기자]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 흔히 티피오(T.P.O)라 불리는 이 세 가지는 많은 사람들이 옷을 입어야 할 때 신경 쓰는 요소다. 타인의 의복을 볼 때도 마찬가지, 작품 속 의상의 티피오는 그 자체로 콘텐츠에 대한 몰입도를 결정한다. 특히 사극에서는 전통 복식인 한복을 얼마나 신경 써서 작품의 주제와 맞게 구현하는 지가 관건. 이 분야에서 최근 드라마 팬들도 놀랄 정도로 호평받은 작품이 '연인'이었다. 이에 '연인'의 모든 의상을 작업한 이진희 디자이너를 만나봤다. 

이진희 디자이너는 최근 인기리에 방송됐던 MBC 드라마 '연인'에서 의상감독으로 활약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무대미술을 전공했고 현재 해당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개인 디자이너 브랜드 하무를 꾸렸으며 다수의 작품에서 디자이너이자 예술감독, 의상감독으로 활약했다. 그는 지난달 30일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에서 OSEN과 만나 '연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번엔 '연인'의 의상감독으로 존재감을 드러냈으나, 이진희 디자이너는 사실 다수의 작품에서 의상과 예술감각을 책임졌던 인물이다. 과거 현대극인 MBC 드라마 '하얀거탑'을 맡았던 그는 국내 방송 중 처음으로 수술복을 파란색으로 바꿨다. 이 전까지 한국 의학 드라마에서 수술복은 모두 방송국 창고에 비치된 녹색 수술복이었다. 하지만 '하얀거탑' 이후로 파란색으로 변경됐고, 모든 의학 드라마에서 이를 적용했다.

KBS 2TV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 또한 이진희 디자이너의 작품인데, 이 드라마에서 이진희 디자이너는 "한복이 촌스럽다는 생각을 바꿔주겠다"는 각오로 심혈을 기울여 작업했다. 실제 '성균관 스캔들'은 내용 만큼이나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아름다운 한복으로도 드라마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품이다. '하얀거탑'과 '성균관 스캔들' 모두 방송가 안에서는 의학 드라마의 복장과 한복 의상의 기준점으로 평가받는 작품들인 터. "한국 한복은 '성균관 스캔들' 전과 후로 나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사진]OSEN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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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이진희 디자이너조차 '연인'에 대해 "정말 가장 힘들었던 작품이다. 도망치고 싶었다"라고 털어놨다. 그는 "병자호란이라는 역사를 상업적으로만 건드리거나 가볍게 소비해선 안된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있었다. 김성용 감독님도 '이 사람들의 삶을 디테일하게 그려보고 싶다'고 하셨다. 고증이 중요했다. 원단도 질감을 묵직하게 선택했다. 사계절을 제대로 구현하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이어 "단적인 예로 따뜻한 실크를 안감으로 대고 길채가 피난 때 입은 누빔 무명을 겉감으로 썼다. 무명이 질기니까. 옛날 사람들이 그랬다. 우리는 비싼 실크를 드러내는 작품들이 많았는데 실제로는 반대였던 거다. 춥고 거친 겨울에 피난까지 떠나야 하니 강한 옷감이 옷과 사람을 보호해야 했을 거다. 실제로 겨울에 흰색 무명을 굉장히 즐겨 입었다고 사료에도 흔적들이 남아있어서 그런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렸다. 가짜가 아닌 진짜의 삶을 옷으로 보여주는 시도를 많이 했다"라고 설명했다. 

"어떤 면에선 제가 제 무덤 팠다"라며 웃은 그는 "정말 힘들었다. 평민들 옷도 다 제작했다. 원래 작품에 들어가면 남녀 주인공이나 조연들 옷만 새로 제작하고 평민이나 갑옷 같은 건 방송사 소품 창고에 있는 옷들을 쓴다. 그런데 사극에도 트렌드가 있다 보니 최근 소품실에 있는 옷들에는 평민들 옷에도 색감이 있더라. 하지만 실제 조선에선 달랐다. 길채(안은진 분)의 몸종인 종종이(박정연 분)와 같은 하층민들은 색감 없은 질긴 옷감을 많이 썼다. 거기에 생활감까지 있어야 해서 염색, 워싱을 여러번 해서 표면 처리를 했다. 웬만한 사극 3~4작품 한 작업을 '연인'에 쏟았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사진]OSEN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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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작업 과정은 확실히 노동이라 할 정도로 쉽지 않았다. 영화 '간신'에서도 의상감독을 맡았던 이진희 디자이너는 "'간신' 때 오래 일하던 후배가 염색을 하느라 화학약품을 많이 써서 피를 토한 적이 있다. 그 뒤로는 직접 염색을 많이 작업하는 건 자중했다. 최대한 컬러 팔레트로 테스트만 하고 팬톤, 컬러 같은 책자들을 봐왔는데 아무래도 손염색을 이겨내는 데엔 한계가 있어서 직접 염색을 해서 샘플을 만들어서 공방 같은 데에 보냈다. 그런데도 '연인' 후반부에는 급한 작업이 많아서 제 작업실에서 많이 손염색을 하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다만 그는 "솔직히 '연인'에서 염색보다 힘들었던 건 갑옷 작업"이라고 털어놨다. "갑옷 수공예 공정을 할 수 있는 곳이 한국에 없다. 대부분 디자인이나 디테일 요청사항을 기록해 중국 업체에 의뢰한다"라고 밝힌 그는 "그런데 코로나19가 터진 뒤로 중국 업쳉에서 한 명만 걸려도 2주씩 문을 닫는 일이 생겼다. 베이징이 한 번 난리가 나지 않았나. 저희가 지난 2008년부터 손발을 맞춰온 업체가 있었는데 그 곳이 해당 기간에 걸렸고 거기에 '연인' 작업이 물려 있었다"라고 밝혔다. 

영화 '안시성'도 작업했던 이진희 디자이너는 "그 때도 중국 업체에서 기본은 해서 왔다. 그리고 한국에서 극적인 것을 손 대서 완성했다. 그런데 '연인'은 그 것조차 안 되는 상황이었다. 몇 천 피스를 불로 태우고 가죽도 워싱하고, 기계로 철갑 샌딩까지 하면서 해봐야 하는데 그 작업을 다 못하게 된 상황이었다"라고 아찔했던 상황을 강조했다.

이어 "작품 스케줄이 늦어지게 되니 그냥 중국에 갑옷들을 한국으로 보내라고 햇다. 그리고 100평짜리 창고를 지인에게 임대해서 3개월 동안 빌려서 저희 팀이 아예 모텔을 한 곳 잡아서 합숙을 하면서 작업했다. 몇 천 벌이 넘었다"라고 설명했다. 갑옷에 디테일을 입히는 건 의복과는 또 달랐다. 기술적인 작업이 상당히 필요했다. 피가 묻은 건 예사고 칼 같은 무구에 긁힌 느낌은 물론 화공에 당한 불에 그을린 느낌까지 더해야 했다고. 이진희 디자이너는 "그런 게 쉽게 지워지면 안 되니 착색을 돕는 액체를 더해서 작업하는데 그 작업물이 아무리 방독면을 쓰고 해도 코나 눈 밑에 남더라. 슬프긴 한데 팬더 같은 그 모습에 서로 빵빵 터지면서 웃기도 했다. 고통스러웠던 순간이다"라며 웃었다. 

[사진]OSEN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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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희 디자이너는 "'연인'이 진짜 제일 힘들었다. 감각적으로 '이렇게 가면 되겠다' 작품을 읽어내고 가는 게 있다. '간신'처럼 색감을 강조하거나 '안시성'처럼 질감을 살리거나 하는 작업들이 있다. 그런데 '연인'은 고증을 기반해서 가야 하다 보니까 감각적으로 어떻게 가야하겠다는 것들이 있지만 실질적으로 고증의 사료들을 철저하게 면밀하게 봐야하는 작품이었다. 소재부터 물성까지 모두 그 시절을 구현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저도 교수로서 학생들에게 동양복식사를 가르치긴 하지만, 조금 더 정확하고 디테일한 상의를 위해 MBC에서 전문 자문위원을 붙여주셔서 철저하게 작업했다. 전쟁 상황을 그렇게 결합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초반엔 도망가고 싶었다"라며 웃은 그는 "이런 적은 처음이었다"라고 혀를 내둘렀다. 다만 그는 "그렇지만 앞서 말씀드렸듯, 역사를 돈벌이를 위한 볼거리의 장치로만 쓰면 안 된다는 생각이 컸다. 우리에게 일제강점기나 병자호란 같은 침략당한 역사는 뼈아픈 사건이지 않나. 실제로 그런 사건들을 통해 많은 게 바뀌기도 했고. 슬픈 역사인 만큼 작은 것까지 제대로 비춰야 한다고 생각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더불어 "연출부에서는 제작 일정 같은 현실적인 여건들 때문에 솔직히 반대하는 분위기도 강했다. 그런데 김성용 감독님만 '그렇게 하시면 좋을 것 같다'고 믿어주셨다. 본인도 역사를 진지하게 다뤄보고 싶다고 하시더라"라고 고백하며 "사실 방송국 창고에 있는 옷 쓰면 저희도 편하다. 실제로 이전에 그렇게 작업해온 작품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연인'은 달랐고 감독님이 믿어주고 약속한 게 있어서 가능하게 해보이고 싶었다. 물리적인 시간만 확보가 된다면 가능할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매일 속울음을 울면서 했지만 작업했다"라고 강조했다. 

[사진]OSEN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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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증을 살려내는 디테일에 기술적인 부분이 강조됐다면, 인물들의 성장과 서사를 의상에 반영한 것은 이진희 디자이너의 예술적인 가각이었다. 실제 '연인'에서는 여자 주인공 길채를 중심으로 파트1부터 파트2까지 의복의 변화가 상당하다. 파트1에서는 사족 '애기씨'였던 길채가 병자호란이라는 역사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충격적인 사건을 겪으며 성장하고 그에 맞춰 양반가 규수일 ��의 의상과 피난 중 의상에 차이를 보인다. 파트2에서는 심양에 포로로 끌려갔다 속환된 뒤 남자 주인공 장현(남궁민 분)과 사랑을 이루고 원숙한 여인으로 성장하는데 이러한 모습도 의상의 변화로 섬세하게 풀어냈다. 

이와 관련 이진희 디자이너는 "길채의 여정에 많은 분들이 공감할 거라고 봤다. 사랑을 찾아가는 것도 있지만 길채가 '연인' 안에서 정말 많은 성장을 보여주지 않나. 그 모습을 길채의 사계절에 빗대 보여드리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이에 "파트1 초반 능군리 애기씨일 때에는 길채의 옷을 최대한 화사하게 아이 같고 철없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러다가 전쟁부터는 무채색으로 무게감을 줘야해서 눌러줬다. 길채도 심리적으로 본인이 무게감을 느껴야한다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그는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포인트가 '볼끼'다. 소녀가 전쟁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지점을 '볼끼'로 알렸다. 이 전에는 '볼끼'를 입고 피난을 가는데 전쟁을 겪으면서 '볼끼'가 벗겨지는 순간이 나온다. 그러면서 길채의 강인한 내적자아가 나오게 된다"라며 "그러다가 파트2 막바지에서는 가을 낙엽 같은 색감을 쓰면서 길채에게 여성으로서나 개인으로서 농익은 느낌을 주려고 했다. 색채로 밀도 있게 표현을 하려 했다"라고 밝혔다.

남자 주인공 장현에게도 다양한 디테일이 있었는데, 특히 이진희 디자이너는 남궁민의 소화력에 감탄했다. 그는 "장현의 활약이 많지 않나. 전투도 하고, 궁에도 들어가고, 심양도 가고 할 게 많다. 그에 맞춰 의상도 변화하는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도포에도 철릭 형태를 결합하고 손목에도 보온과 전투에서 보호해줄 수 있는 장치들을 더해서 품격과 활동성을 다 가미해야 했다. 그런데 하나씩 더할 때마다 남궁민 씨와 너무 찰떡이었다. 작업한 입장에서 볼 때마다 흡족했다"라고 강조했다. 

[사진]OSEN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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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노력의 결과, '연인'을 본 시청자들 사이에서 작품 속 의상에 대한 호평이 줄을 이었다. '연인' 판권을 구매한 일본 측에서 한국 전통 의상, 한복에 대한 자료를 요구하기도 하고 이에 힘입어 오는 2024년 1월 말 전시회도 준비하고 있을 정도다. 무엇보다 최근 '연인'에 대한 호평 뿐만 아니라 젊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한복에 대한 재해석과 실생활에서의 응용에 대해 호평이 줄을 잇는 상황. 세계적인 걸그룹 블랙핑크가 뮤직비디오와 코첼라 무대에서 한복을 재해석안 의상을 소화해 해외 팬들이 주목하기도 했다.

이진희 디자이너 또한 "해외 팬들이 DM으로 그렇게 '연인' 의상에 대해 물어보더라. '볼끼'를 물어보는 분들이 많아서 놀라웠다"라며 신기해 했다. 과거 KBS 2TV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도 작업했던 그는 "'구르미' 때는 제가 작업한 박보검, 김유정 씨 의상이 그대로 혼수한복들에 걸려 있기도 했다. 제 작업실 사진 그대로를 마네킹에 입힌 건 화가 나는 부분이기도 했지만, 드라마나 영화 속 작업물이 실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선순환이라고 생각한다"라고 평했다. 

특히 그는 "제가 90년대 학번인데, 우리 세대는 대체로 문화열등감이 심한 세대다. 미국 드라마 보고, 일본 애니메이션 보고, 홍콩 느와르 보고, 팝송 불러야 세련됐다고 느낀 세대다. 한복은 부모님들이나 찾는 거였는데 '성균관 스캔들' 때 그걸 바꾸고 싶었다. 다행히 그 때 작업물을 젊은 친구들이 좋게 봐줬다. 또 지금 어린 친구들은 K브랜드로 우리가 문화를 선도할 수 있다는 걸 경험하며 전통에 대한 선입견 없이 자란 세대이지 않나. '연인'을 통해 우리의 전통도 있는 그대로 해외에 보여주면서 감동시킬 수 있다는 걸 느끼길 바란다. 넷플릭스 '바이킹' 같은 시리즈가 우리에게도 울림을 남기기도 하는 것처럼 우리의 전통을 살린 콘텐츠도 해외 팬들에게 그럴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 monamie@osen.co.kr

[사진] MBC 제공.


연휘선(monamie@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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