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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처럼 살지말자" VS "윤석열 탄핵"…서초동 현수막 전쟁

서울 서초동 법조단지. 서울중앙지법과 서울중앙지검 사이 삼거리에는 ‘현수막 전쟁’이 한창이다. 대로변까지 150m 남짓한 길을 두고 〈이재명 체포〉부터 〈윤석열 탄핵〉까지 정치 구호가 적힌 현수막 20여개가 빼곡히 걸려 있다.
지난 11월 22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앞 삼거리에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 김정민 기자
비방 내용이 대부분… 자리 선점 다툼도
현수막의 주요 소재는 역시나 정치다. 검찰 수사를 받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해부터 올해 내내 옹호와 비난을 동시에 받는 중이다. 보수 단체가 〈이재명 구속으로 조용히 살고 싶다〉고 내걸면, 진보 단체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김건희도 구속하라〉고 맞대응하는 식이다. 지난 9월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직후엔 현수막이 약 30개까지 늘어났었다.

보수 쪽에선 ‘대한민국 애국순찰팀’이 가장 적극적이다. 애국순찰팀 대표를 맡고 있는 황경구씨는 “야밤에 우리 현수막을 치우는 세력이 있다. 동료들과 함께 24시간 3교대로 보초를 서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 최저기온이 영하 8도까지 내려간 지난 30일에도 단체 회원들은 두꺼운 패딩을 입고 농성장 안에서 대기 중이었다.
보수단체가 24시간 집회시위를 하는 농성장. 시민단체의 경우, 사전 신고한 집회시위를 동반해야 인근에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다. 사진 이창훈 기자

황씨는 어렵지 않으면서도 단박에 이해되는 단어를 현수막에 넣는다고 했다. 그는 〈가훈: 이재명처럼 살지 말자!〉, 〈개딸들 자진해산 하시오〉, 〈법원이 구멍가게? 판사가 엿장수입니까〉 등을 사례로 제시했다. 황씨는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하지 않으려고 혐의를 직접 언급하기보다 비유적인 표현을 많이 쓴다”고 말했다.

진보 측에선 정치유튜버 김상균씨가 새로 창당한 열린민주당이 활동한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한동훈 장관, 이 대표 수사를 맡은 검사들이 단골 소재다. 〈폭탄주냐? 국정 말아먹는 윤석열 탄핵〉, 〈(한 장관 사진) 이것이 잡범이다〉부터 검사들의 사진, 이름을 열거하며〈정치조작 부패 검사 탄핵〉이라 적는 등 비방 수위도 높다.




보수 단체가 설치한 현수막. 검찰 수사를 받는 이 대표에 대한 비난이 대부분이다.
진보 단체는 윤 대통령을 비방하는 현수막을 달고 있다. 김정민 기자


박근혜 탄핵때 시작해 조국 사태로 보편화
양측 모두 눈에 잘 띄는 곳을 선점하려는 탓에 신경전도 상당하다. 물리적 충돌을 막으려고 서초구청은 하루 3회씩 현장 점검에 나서고 있다. 구청 관계자는 “현수막을 거는 이들은 ‘판사, 검사들이 출퇴근할 때 읽는다’고 하던데, 정말 그럴지는 의문이다”면서 “그래도 오래 돼서 그런지 관련 규정도 알고 행정집행도 잘 따르는 편”이라고 말했다.
2018년 4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1심 선고 전후로 서울 서초구 법원삼거리에 현수막이 붙어 있다. 뉴스1

서초동 현수막 전쟁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국정농단 수사부터 본격화됐다고 한다. 검찰 수사로 박 전 대통령이 서울구치소에 수감되면서 법조단지에 정치 구호성 현수막이 걸리기 시작했다. 2018년부터 각 혐의별 선고가 나올 때마다 〈불법 감금된 박근혜 대통령 무죄석방〉, 〈박근혜보다 깨끗한 정치인 있으면 나와봐라〉부터 〈국민의 명령이다, 검찰은 똑바로 수사하라〉까지 정반대의 현수막들이 앞다퉈 걸렸다.

2019년 하반기 조국 전 장관에 대한 수사를 거치면서 현수막은 일상이 됐다. 그해 9월부터 매주 토요일마다 서초역 일대에서 ‘검찰개혁 촛불집회’가 열렸고, 보수 진영이 맞불집회를 놓으면서 당시 반포대로 500m 가량 도로변이 전부 양측의 현수막으로 뒤덮일 지경이었다. 최근 들어서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나 수원지검 앞에도 현수막이 줄지어 설치됐다.

2019년 10월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을 지지하는 집회가 서초구 반포대로에서 개최됐다. 이들은 '조국 수호, 검찰개혁' 현수막을 내걸었다. 뉴스1
조국 지지 집회에 대응해 보수단체는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문구를 내걸었다.

길이 2미터 기준, 현수막 제작 비용은 5~7만원이다. 이슈가 발생하면 수백만원씩 돈을 들여 새 것으로 교체하는데, 현수막 단체들이 활동을 홍보하고 지지자로부터 후원금을 받는 구조가 정착됐다. 옥외광고물법상 집회시위를 동반하면 따로 허가를 받지 않아도 30일 간 현수막을 걸어둘 수 있다.

이목을 끌기 위해 원색적 비난을 했다가 선을 넘는 경우도 있다. 이 대표가 우는 사진을 따로 잘라 쓴다든가, 객관적 근거없이 검찰 수사를 조작이라고 주장하는 현수막이 대표적이다. 지난 13일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유창훈 판사를 비방한 시민단체를 옥외광고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대법원 일대에는 ‘정치판사 유창훈. 정치하냐? 공천 하나 받게?’라는 현수막이 걸렸었다. 이 단체는 고발된 직후 현수막을 자진 철거했다.

법원 관계자는 “정치인 사건은 판결이 있을 때마다 판사에 대한 인신공격이 있었다. 도를 넘는 행위에 경각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면서 “자진 철거한 점을 감안해 고발을 취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무분별한 비방 현수막에도 뾰족한 대응책은 없는 실정이다. 현행법상 현수막 내용에 대한 규제 근거가 없어, 게시기간 초과 등으로 위법 소지를 따져 단속한다.



김철웅(kim.chulwo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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