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 CEO “美 반도체, 中 공급망 독립 최소 10년 걸려”
반도체 패권을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이 중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에서 벗어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견해가 나왔다.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는 29일(현지시간) “미국 칩 제조업체가 중국으로부터 공급망을 독립하는 데 최소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미국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린 뉴욕타임스(NYT) 주최 ‘딜북 서밋’ 강연에서다. 그는 엔비디아 제품이 세계 각지에서 생산된 부품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 설명하며 이같이 전망했다.
황 CEO는 중국과 디커플링(공급망 분리)하려는 바이든 정부의 반도체 정책에 대해 “우리는 반드시 그 여정(공급망 독립)을 가야 한다”면서도 “하지만 공급망의 완전한 독립은 10∼20년 동안 실현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첨단 반도체 수요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을 완전히 외면하기가 쉽지 않아서다. A100·H100 등 엔비디아의 AI 칩은 전 세계 AI 반도체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한다. 엔비디아 전체 매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25% 수준이다. 엔비디아는 미국의 대중(對中) 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 이후 성능을 기존보다 낮춘 중국 시장 전용 AI 칩을 만들어 거래를 이어왔다.
미 상무부는 지난달 중국의 AI 산업 발전을 막기 위해 수출 금지 품목을 저사양 반도체까지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엔비디아는 강화된 수출 규제 조치에 맞추기 위해 새로운 그래픽처리장치(GPU) 출시를 계획하고 있으나 최근 기술적 문제로 출하가 늦어지고 있다.
미국은 엔비디아 외에도 AMD·인텔 등의 첨단 반도체 중국 수출을 제한하고 있다. 이에 중국에서는 미국산 제품 대신 자체 개발한 GPU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중국 최대의 포털인 바이두는 이달 초 화웨이가 개발한 AI 칩 1600개를 주문해 이미 절반 이상을 도입한 것으로 알려진다.
황 CEO는 AI 기술의 고도화에 대한 의견도 밝혔다. 그는 “인간의 지능과 비슷한 수준의 AI가 5년 안에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AI가 인간을 뛰어넘는 시점이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그는 “칩 설계 및 소프트웨어 제작부터 신약 발견 및 방사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산업 분야의 기업이 필요에 따라 AI 도구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 구글은 최근 AI를 이용해 수십억 개의 소재 조합 중 초전도체·배터리 등에 사용할 유력한 소재 결정구조 후보를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AI 칩 가동에 필수적인 고대역폭 메모리(HBM)가 차세대 메모리 반도체의 최대 격전지로 떠오르면서, 그간 SK하이닉스가 독점했던 엔비디아 물량을 두고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모양새다.
이날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4세대 제품 HBM3이 엔비디아 샘플 검증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는 공급망 다각화를 위해 SK하이닉스 외에도 삼성과 마이크론으로부터 HBM 샘플을 받아 테스트 중이다. 업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추가로 연내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본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마이크론의 경우 양산 물량이 전체의 10% 미만이고 점유율 확대도 쉽지 않다”면서 “SK하이닉스는 이미 6세대 HBM4 개발에 착수하는 등 시장 선점 효과가 커 내년 영업이익 측면에서 3년 만에 최대 실적을 기록할 것”이라 내다봤다.
이희권(lee.hee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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