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으로 읽는 책] 불러줘 우리를, 우리 지닌 것으로
우린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 여전히 서로를 보지 못하고 있다./ 안개 속에서 흔들리는 두 등대./ 우린 우리를 잡을 수 없었다.// 올해는 어떤 해도 아니었다./ 다음 세대들이 물으면, 우린/ 이런 식으로 되었다고 말하겠지:/ 삐걱거리는 텅 빈 운동장들,/ 셀러리 줄기처럼 똑바로 누인 육신들,/ 온기가 남아 있는 자국, 공휴일들,/ 모임들 & 사람들, 녹슬어버렸네/ 우리의 매캐한 두개골에서./ 취소되고 흔들린 순간들,/ 줄거리 없는 게 아니라, 계획에 없던, 시간이 무 너 졌 다어맨다 고먼 『불러줘 우리를, 우리 지닌 것으로』
이제 끝인가 싶지만, 끝이 아니고, 아직도 끝은 잘 보이지 않는다. 훗날 누군가 물어온다면 그저 이렇게 돼버렸다고 말할 수 있을 뿐. 팬데믹 시대의 초상을 담은 시 ‘등대’의 일부다. 고먼은 조 바이든 대통령 취임식에서 역대 최연소로 축시를 읽어 주목받은 20대 흑인 여성 시인 겸 사회운동가다. 역사·언어·정체성 등 다양한 주제를 다채로운 방식으로 다룬 시집은 특히 팬데믹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말자는 메시지로 미국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이 연대감 외엔/ 어떤 왕국도 필요 없다는 걸/ 우리 자신을 잃고 나서야 알게 되었네’(‘우리 무얼 하고 있지?’) ‘매일 우리는 배우고 있다/ 편안함이 아니라 본질과 더불어 사는 법을./ 미워하지 않고 서둘러 나아가는 법을./ 우리를 넘어서는 이 고통을/ 우리 뒤에 두는 법을./ 기술이나 예술처럼,/ 실천하지 않고 우리가 희망을 지닐 수는 없다.’(‘매일 우리는 배우고 있다’)
양성희 /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with the Korea JoongAng Daily
To write comments, please log in to one of the accounts.
Standards Board Policy (0/25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