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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목의 시선] 차라리 AI 배우를 써야 하나

정현목 문화부장
2005년 초 한 광고대행사가 보관해온 연예인 자료가 유출돼 파문이 일었다. ‘연예인 엑스파일’ 사태다. 스타급 연예인과 신인 120여 명의 위치와 전망, 매력과 자기관리, 그리고 항간의 소문을 정리한 것이다. 연예 리포터, 연예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만들었다. 이 자료가 유출되면서 연예인들의 남녀 관계, 금전 문제, 집안 사정 등 사생활 관련 소문이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다. 일부 소문은 나중에 사실로 드러나기도 했다.

민감한 내용의 자료가 유출된 게 가장 심각한 문제였지만, 광고대행사가 연예인들의 사생활을 캐고 다녀도 되느냐는 비판도 일었다. 하지만 광고모델 이미지가 브랜드 자산의 일부가 된 현실에서 모델의 사생활과 루머를 파악하는 건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필요한 일이란 의견 또한 만만치 않았다.

스타 배우들의 잇단 마약 의혹
손쓸 길 없는 콘텐트업계 비상
유혹 이겨내는 게 스타의 책임

엑스파일 사태가 터지기 3년 전, CF퀸으로 군림하던 단아한 이미지의 인기 여배우가 마약투약 혐의로 구속돼 그를 모델로 썼던 수많은 광고주가 큰 타격을 입었던 터였다.

불현듯 18년 전 일이 떠오른 건, 최근 잇따르는 연예인 사생활 리스크 때문이다. 배우 유아인의 마약복용 의혹이 가라앉기도 전에, 모범가장 이미지의 배우 이선균까지 마약복용 의혹에 휩싸이며 큰 파문을 일으켰다.



연예인 사생활 리스크에 대한 콘텐트업계의 우려와 파장은 예전에 비할 바 아니다. 마약·성적 일탈·음주운전·폭행·학력위조뿐 아니라, 학교폭력·빚투·투자사기 연루, 부적절한 SNS 내용 등 유형도 다양해졌다. 사회적 공분을 사는 학교 폭력은 더욱 민감하다. 오죽하면 기획사가 연습생에게, 오디션 프로그램 제작진이 참가자에게 학생부 제출을 요구할까.

광고모델 스캔들이 터지면 바로 광고를 내리고, 새로운 얼굴의 광고를 내밀면 된다. 하지만 물의를 일으킨 배우가 출연한 영화와 드라마는 그리 간단치 않다. 촬영을 마친 작품은 공개를 무기한 미뤄야 하고, 촬영 중인 작품은 급하게 캐스팅을 바꿔야 한다. 문제 배우의 분량을 덜어내고 다시 찍으려면 적잖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

이선균이 출연한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유아인이 출연한 영화 ‘승부’ ‘하이파이브’와 넷플릭스 시리즈 ‘종말의 바보’는 모두 개봉 여부가 불투명하다. 이들 작품의 제작비를 합하면 1000억원에 가깝다.

그 피해는 제작진과 투자자, 동료 배우가 떠안아야 한다. 조연 배우들은 커리어뿐 아니라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다. 넷플릭스 시리즈 ‘사냥개들’을 연출한 김주환 감독은 촬영 중 발생한 주연 김새론의 음주운전 때문에 각본을 다시 쓰고, 분량을 뭉텅 잘라내느라 탈모·디스크·자율신경계 문제 등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물의를 일으킨 배우에게 위약금을 물게 한다지만, 수백억원에 달하는 제작비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배우가 개봉 때까지 사고 안 치고 착하게 살아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는 한 영화제작자의 말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대중이 느끼는 충격과 배신감은 금액으로 환산할 수 없다. 이선균 주연의 드라마 ‘나의 아저씨’를 인생작으로 꼽았던 많은 이들이 느끼는 허탈감은 누가 보상해줄 것인가.

업계에선 “차라리 늙지 않고 사생활 리스크도 없는 AI(인공지능) 배우를 캐스팅하는 게 낫겠다”는 푸념까지 나온다. 정말 이대로 가다가는 출연 계약서에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경우) 출연 분량을 AI로 대체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도덕 교과서 같은 얘기지만, 연예인 스스로 본분에 충실하고 절제하는 수밖에 없다. 창작자의 양심에 맡겨야 하는 표절 문제와 다를 바 없다. “연예인은 주변에 안 좋은 사람이 꼬이기 쉬운 직업”이란 가수 이효리의 말처럼, 달콤한 인기에는 치명적인 유혹이 뒤따른다. 이를 이겨내는 게 스타의 공적 책임이다.

60년 넘는 연기 인생에서 한 번도 구설에 휘말린 적 없는 배우 안성기는 “영화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기 위해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고 자제하며 살았다”고 한다. 그런 수도승 같은 절제까진 아니더라도, 과욕과 허세 때문에 자신을 무너뜨려선 안 된다.

지금의 인기가 영원할 수 없다는 현실 인식, 대중의 사랑을 배반해선 안 된다는 신의, 그리고 자신의 일탈로 한솥밥 먹는 제작진을 힘들게 해선 안 된다는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인기’ 말고 ‘연기’다. 뜬구름처럼 덧없는 인기에 취하지 말고, 연기에 취하란 얘기다.



정현목(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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