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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마음 따라 길을 가면

이기희

이기희

아무 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늘어져 한숨만 쉬고 있다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 게으름이 게으름을 낳고 나태는 더 큰 나태를 초래한다. 나태는 소극적인 의미의 게으름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을 거부하는 것이다.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행위로 자신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서 게으름보다 더 심각하다.
 
부지런 떨며 부엌과 서재에 새해 달력을 미리 갖다 놓는다. 크리스마스트리도 장식했다. 올해는 애들도 오지 말라고 했다. 홀로 사는 연습을 한다. 언제까지 어제의 시간들에 매달려 오늘을 갉아먹을 수는 없다. 아파도 슬퍼하지 않기로 한다. 백번 천번 다잡아도 마음은 고삐 없는 송아지처럼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흘러간다.
 
아래층 화실 중앙에는 크고 둥근 구닥다리 시계가 걸려있다. 작품에 몰두하다 고개만 들면 몇 시인지 금방 안다. 칠칠치 못해서 작업하다 핸드폰 찿아 시간을 알려면 이리저리 헤매다가 알록달록한 물감을 여기 저기 묻힌다. 없는 걱정도 미리하는 스타일이라서 ‘배터리가 다 닳으면 작동을 멈출 텐데’라고 유심히 바라본다. 새 달력의 빈칸을 다 채우지 못해도 실망하지 않기로 한다.
 
마음도 지치면 풀이 죽는다. 힘들고 무겁게 등에 진 짐을 내려 놓고 싶은 날, 이유 없이 가슴에 구멍이 뚫리고, 일이 손에 안 잡히고, 괜시리 사는 게 허무해지고,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싫은 날.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하기 싫은 날은, 그냥 멍 때리며 땅거미처럼 몰려드는 서러움에 몸을 맡긴다. 먹물이 뚝뚝 떨어지는 어둠은 세상 모든 근심을 집어 삼킨다. 빛이 바다 저 켠으로 가라앉는 날은 그냥 잠시 멈추고 싶을 뿐이다. 새 건전지로 갈아 끼우고 배터리가 충전 될 때까지 시간이여! 생의 고비 돌고 돌며 힘겹게 버텨온 세월 잠시 멈추고, 마음 추스를 여유를 줄 수 있겠나.
 
빌 게이츠는 힘들고 복잡한 문제에 직면하면 ‘나태한 사람을 찿는다’고 한다. 나태한 사람은 복잡한 문제를 간결하고 편리하게 해결한다고 평가한다. 조직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멍부형(멍청하고 부지런한)리더’보다 ‘똑게형(똑똑하고 게으른)’리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나태한 사람은 복잡한 문제에 직면 했을 때 무작정 뛰어들지 않고 최적의 해결 방법을 찿기 위해 머리를 굴린다는 말이다.
 
일시적인 게으름과 나태함을 무작정 부정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게으름을 나쁘게 몰아부치고 잠깐의 여유나 휴식조차 게으름으로 치부하는 사회에서 번아웃 증후군이나 우울증 등을 포함한 각종 정신적 문제가 발생한다. ‘번아웃 증후군’은 과도한 직무에 시달려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느낄 때 발생한다. 일에 대한 열정과 성취감을 잃어버리는 정신적인 탈진 증상이디. 몸은 마음 따라 움직인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강제로 휴식을 취하며 발생하는 심리적 현상이다.
 
학창시절 내 성적표는 분치기 초치기 시험공부의 결과물이다. 그림 그리기와 글짓기, 좋아하는 과목은 신나게 공부했다. 좋아하는 일 확실한 목표를 가지면 부지런해진다. 현대인은 무의식적인 시간 강박에 매몰되어 마음이 가는 길을 알지 못하다. 시도 때도 없이, 이유 없이 등장하는, ‘허무의 꼬리 잡기’나 ‘고장 난 배터리 신드롬’은 자기 소모의 결과로 발생하는 피로나 나태와는 구별된다는 게 나의 주장이다.
 
독일 속담에 ‘부지런한 사람에게는 1주일에 7번의 오늘이 있고, 게으른 사람은 7번의 내일이 있다’는 말이 있다. 내일의 태양은 오늘 뜨지 않는다. 아무 일도 하지 않아도 마음은 천리 만리 길을 간다. 마음 따라 길을 가면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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