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존 행콕 시그니처 룸
한쪽에 마련된 파티룸에서는 부페식 식사도 가능해 많은 인원이 찾을 때에는 미리 예약을 해야 했다. 가격대가 비싼 편이라 자주 가기에는 부담이 됐지만 특별한 날이라면, 더군다나 타지에서 특별한 사람이 시카고를 찾는다면 아마 가장 먼저 식사를 할만한 곳으로 꼽히는 곳이다. 메뉴 역시 인상적이었는데 애피타이저로 나오는 해산물 모듬 타워는 300미터 이상의 높이에서 즐기는 것이라는 의미가 더해져 기억에 남는다.
개인적으로는 한 층 위에 자리잡은 시그니처 라운지가 더 좋았다. 멋지게 차려 입고 분위기 있게 즐기는 식사도 좋지만 이 라운지는 무엇보다 밤 늦게까지 문을 열어 야간시간대에 찾기 좋았다. 운만 좋으면 시카고 야경 사진을 가장 잘 찍을 수 있는 남쪽 창가에 자리를 잡을 수도 있었다. 이 스팟에서 유리창에 빛이 반사되지 않게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누구나 시카고의 다이내믹한 야경 사진을 가질 수 있다.
창가를 따라 놓여진, 크지 않은 테이블에 자리잡고 간단한 칵테일이나 케익 한 조각, 맥주 한 잔이면 이 멋진 장관을 감상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이나 타지에서 온 손님들을 대접할 때 이만한 곳이 없다. 끝내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시그니처 라운지에서 사진이 잘 나오는 곳으로 꼽히는 장소는 여자 화장실이다. 직접 확인해 본 남자 화장실하고는 사뭇 다르다고 한다. 그 이유는 여자 화장실 벽면이, 특히 남쪽으로 향한 벽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통유리를 통해 다운타운 남쪽과 서쪽, 동쪽이 한 눈에 들어오는데 이 스팟이 시카고의 야경을 가장 포토제닉 하게 담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사실 존 행콕 센터로 아직까지 불리는 875 노스 미시간 애비뉴는 94층에 별도의 전망대가 있다. 360 시카고 전망대로 불리는 이 곳에는 틸트(TILT)라고 하는 장치가 마련돼 있다. 말 그대로 기울어진 유리창인데 관람객이 바닥에서 천장까지 연결된 유리창 손잡이를 잡고 있으면 이 유리가 건물 바깥으로 약 30도 정도 기울어지게 설계된 장치다. 그러니까 몸이 건물 바깥으로 기울어지면서 건물 아래 모습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다리가 슬슬 떨리는 고통쯤은 각오해야 한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거친 바람소리 역시 스릴감을 더해준다. 그리고 이 전망대에는 해질녘에 가야 한다. 전망대 북서쪽 코너에 카페가 마련돼 있는데 이 곳에서 보는 시카고 일몰이 그야말로 끝내주기 때문이다. 나무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아 술 한잔 하면서 바라보는 석양은 100층 가까운 높이가 주는 분위기에 더해 몽환적이기도 하다.
이런 경험이 가능한 것은 브루스 그래햄와 파즐러 칸이라는 시카고언 덕분이다. 두 사람은 시카고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건축사 SOM에서 일하면서 시카고 마천루를 디자인했다. 각각 페루-콜롬비아와 방글라데시 출신의 이민자인 두 사람은 존 행콕 센터의 유명한 X자 철제 빔 골격을 창안해 건물을 더 높게, 더 튼튼하게 하면서 실내 공간을 확보할 수 있는 디자인을 만들어 냈다. 두 사람은 이후 시어스 타워 디자인도 맡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을 만드는데도 앞장 섰다. 시카고의 스카이라인을 만드는데 크게 기여한 두 아키텍처가 모두 이민자였고 특히 ‘건축계의 아인슈타인’으로도 불렸던 칸은 아시안이었다는 사실에 눈길이 더 간다.
전망대보다 한층, 두층 높은 곳에 위치한 시그니처 룸과 라운지는 오랫동안 시카고언들에게 특별한 장소로 사랑받아 왔다. 프로포즈를 한다거나 기념할 만한 이벤트가 있거나 타지에서 대접해야 하는 손님들이 왔을 때 가장 시카고스러운 접대를 할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이 곳에서 오랫동안 셰프로 일했던 한 직원은 손님 뿐만 아니라 이 곳에서 일하는 직원 역시 특별한 곳에서 일한다는 것을 항상 느낀다고 한다. 또 기념일마다 이 곳에서 식사를 한 뒤 유명한 시카고 다운타운 마차를 타는 것이 평범한 시카고 가족들의 이벤트 챙기기라는 표현도 있었다.
이런 시그니처 룸과 라운지가 최근 갑작스럽게 문을 닫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어려웠다는 것이 업체측 입장이라고 알려졌다.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는 직원들은 대량 해고가 위법이라며 소송을 제기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소중하게 간직할 만한 기억들을 다시 이 곳에서 만들 수 없다는 현실에 많은 시카고언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시카고를 한 장소에서 살펴볼 수 있는 멋진 장소이기에 언젠가는 다른 모습으로 주민들에게 찾아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던 그 곳을 이제 추억으로만 남겨야 한다는 점은 분명 아쉬움으로 남는다. (편집국)
Nathan Park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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