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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종군 여기자 히긴스

1950년 6월 27일 맥아더 사령관보다 먼저 도쿄에서 특별기가 떴다. 네 명의 종군 기자가 탔는데, 그 가운데 여자도 한 명 있었다. 발레리나를 꿈꾸던 마거릿 히긴스(1920∼1966)였다. 그는 미국 명문 컬럼비아대를 졸업하고 당시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극동지국장 신분이었다.
 
홍콩에서 선박운송회사 직원으로 근무하는 아버지와 프랑스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히긴스를 동료들은 ‘핏속에 빙수가 흐르는 여자’라고 불렀다. 히긴스는 한국전쟁사에서 최초로 1951년 1월 『한국전쟁(War in Korea)』을 출간해 한국을 세계에 알리며 지원을 호소했다. 그 책으로 그해 퓰리처상을 받았고, AP통신은 ‘올해의 여성’으로 선정했다.
 
명성을 얻은 히긴스는 곧이어 ‘베트남-프랑스전쟁’의 종군 기자로 활약하다 기생충이 혈관을 파고드는 풍토병에 걸려 46세의 나이로 아깝게 세상을 떠났다.
 
미국 국방성은 공로와 죽음을 안타깝게 여겨 알링턴국립묘지 국군묘역에 안장했다. 그의 앞뒤에 이런 사례가 없다. 할리우드는 1994년 그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들었다.
 
6·25전쟁 발발 이후 아군이 한창 궁지에 몰리던 1950년 8월 17일 한국해병대 1개 중대가 경남 통영에서 북한군 1개 대대 병력을 무찔렀다.  
 
히긴스는 이를 소재로 ‘귀신 잡는 해병(Ghost Catching Marine)’이라는 기사를 써 미국인을 감동하게 했다. 한국 해병대는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 해병대가 지금 흔들리고 있다. 누구의 잘잘못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해병대를 모욕하거나 분노하게 만드는 일은 국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육군 일병 출신인 나는 우리 해병대만 보면 가슴이 설렌다.

신복룡 / 전 건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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