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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han Park 기자의 시사분석] 데이먼 사일로

박춘호

박춘호

55번 고속도로를 타고 남서쪽으로 가다 보면 눈에 띄는 건물이 하나 나타난다. 연한 브라운색의 건물은 콘크리트로 지어졌으며 데이먼 사일로(Damen Silos)라고 불리는데 현재는 사용되지 않고 방치된 상태다. 하지만 이전에는 산타페 엘리베이터로 불렸다. 만들어진 지 100년이 넘은 이 유서 깊은 건물을 두고 최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철거해야 하는지, 보전해야 하는지가 관건이다.  
 
사일로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건물의 용도 때문이다. 곡물을 보관하기 위해 만들어져서다.  
 
사일로는 시카고 최초의 마천루(skyscraper)이기도 하다. 1800년대 착공돼 1906년 현재의 모습이 나타났으며 딱 90년 전인 1933년 완공됐다. 하지만 여러 차례 화재와 폭발로 인해 1970년 이후로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사일로는 또 시카고 경제의 상징이다. 콩과 옥수수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일리노이 지역의 특성상 곡물은 육류와 함께 시카고서 거래되던 주요 상품이었다. 1848년 설립된 시카고 거래소(The Chicago Board of Trade)에서 주로 사고 팔던 품목이 콩과 옥수수, 밀 등이었다. 현재는 거래소에서 옵션과 퓨처 상품도 거래될 뿐만 아니라 금과 은, 연방 재무부의 채권, 에너지 등도 사고 팔고 하지만 처음에는 콩과 옥수수 거래로 시작됐다. 1898년 버터와 계란 거래소로 시작된 시카고 상품 거래소(Chicago Mercantile Exchange)와 함께 시카고는 곡물과 육류의 거래 허브였다. 육류의 경우 현재는 지명으로만 남은 Back of the Yard 인근의 Union Stock Yard가 있었다. 전국에서 올라온 육류의 거래가 이 곳에서 이뤄졌고 거래 후 meat packing을 거쳤던 곳으로 유명했다. 유니온 스탁야드는 1865년에 세워졌으며 한때 전세계에서 가장 큰 육류 거래 및 처리 시설이었다.  
 
이런 역사로 인해 데이먼 사일로는 시카고 지역 경제에서 상징하는 바가 클 수밖에 없다. 한때는 곡물 거래와 유통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시카고 시내에 사일로가 들어섰고 오랫동안 운영됐으나 현재는 그 기능을 잃고 방치됐다. 일리노이 정부가 이 건물을 사들였다가 도로 건설을 위한 자재 창고로도 사용되기도 했었다.  
 
산타페 엘리베이터는 1838년부터 1959년까지 시카고에서 사용됐던 110개의 곡물 저장고 중 하나였다.  
 
사실 산타페 엘리베이터는 곡물 저장고가 들어설 수 있는 최상의 입지 조건을 갖췄다. 미시간 호수와 만나는 시카고 강의 남쪽 지류와 인접해 있고 화물 철도의 허브의 시카고의 중심부에 있었기 때문이다.  
 
사일로의 작동 원리는 간단하다. 강이나 열차를 통해 실려온 곡물을 컨베이어 벨트를 통해 사일로 상부를 통해 저장하고 중력에 의해 밑으로 내려온 곡물을 다시 싣고 전국 곳곳으로 유통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이 간단한 원리로 많은 노동력을 아낄 수 있었고 곡물 거래 방식에도 획기적인 방식이 도입될 수 있었다.  
 
사일로를 통해 곡물은 각 종류별, 등급별로 분류될 수 있었고 곡물의 품질은 비교적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거래인들은 곡물이 다 추수되고 운반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미리 수확된 곡물을 사고 파는 퓨처 거래를 할 수 있게 된다. 시카고가 선물 거래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산타페 엘리베이터와 같은 시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는 셈이다.  
 
초기에는 사일로가 목재로 지어졌지만 이후 화재 발생으로 안전성에 문제가 제기되자 콘크리트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산타페 사일로 역시 1906년 화재로 전소되자 당시로는 최신 건설 기법인 콘크리트 타설이 적용됐다.  
 
MAT 아스팔트사는 지난해 일리노이 정부로부터 23에이커 크기의 부지와 사일로 를 매입한 후 건물을 철거하고 재개발을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일부에서는 이 건물을 랜드마크로 선정해 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역 주민들도 안전한 철거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입장이고 추후 어떻게 개발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MAT 아스팔트사가 시청에 제출한 철거 계획은 아직 심사 중이다.
 
사일로는 화가들의 캔버스로, 서바이벌 기술을 익히고자 하는 탐험가들의 실험실로, 영화 ‘트랜스포머’의 배경으로도 사용됐다. 사일로를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측에서는 미네소타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도 시도했던 것처럼 박물관으로 쓰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 가까운 곳에 산책로가 조성되는 만큼 이를 주민들의 휴식터로 쓰면서 시카고 역사로 남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흉물로 남았던 데이먼 사일로를 통해 시카고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편집국)
 
 
 

Nathan Park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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