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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봉제산업…그럼에도 불구하고

창간기획-위기의 한인사회 주력 업종(하)
봉제업 종사자 현재는 40~50명에 불과
‘정교함과 꼼꼼함’이 살아남기 위한 전략

박홍규 씨가 운영 중인 봉제 공장 모습.

박홍규 씨가 운영 중인 봉제 공장 모습.

1989년 뉴욕에서 봉제 사업을 시작해 현재 맨해튼 가먼트스트릭트에서 하이패션 브랜드를 운영 중인 C&J 스포츠웨어 박홍규 대표.

1989년 뉴욕에서 봉제 사업을 시작해 현재 맨해튼 가먼트스트릭트에서 하이패션 브랜드를 운영 중인 C&J 스포츠웨어 박홍규 대표.

“최고가 돼야 한다는 생각으로 뛰어들면, 여전히 장래성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이민 초기 한인 경제의 젖줄 역할을 하던 한인 봉제 업계가 쇠퇴해가는 가운데, 1989년 뉴욕에서 봉제 사업을 시작해 현재 맨해튼 가먼트 디스트릭트에서 하이패션 브랜드를 운영 중인 C&J 스포츠웨어 박홍규 대표는 과거와 달리 쪼그라든 현재 봉제산업의 전망에 대해 여전히 희망적으로 평가했다.  
 
1983년 뉴욕에 도착해 봉제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한 박 대표는 1989년 맨해튼에 봉제공장을 오픈했다. 당시 뉴욕에 이민 온 한인들에게는 직업 선택지가 많지 않았기에, 많은 한인이 봉제 산업에 종사했다. 1980~1990년대에는 뉴욕한인봉제협회 회원이 400명에 달하는 등 패션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봉제 산업은 한인 사회의 근간이 됐다.  
 
박 대표도 부푼 마음을 안고 봉제 사업을 시작했지만, 1994년 미국과 멕시코, 캐나다 사이의 교역 장벽을 없애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통과되며 첫번째 위기를 맞았다. 당시 뉴욕의 봉제업이 멕시코로 대부분 이동했고,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한 후 전반적인 소비가 줄어들자 거래하던 회사들이 뉴욕을 등지고 타 국가와 거래하기 시작하며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 봉제업에 종사하던 한인들은 타겟, 월마트 등에 납품되는 저가 의류를 주로 생산했는데, 공장이 자동화되고 생산비용 절감을 위해 중국, 남미, 캐나다 등으로 공장들이 이동하며 맨해튼 봉제업은 자연스레 축소됐다. 이에 많은 한인 봉제업체들은 사업을 접고 업종을 변경했다.  
 


이런 상황 속 박 대표도 2005년 남미로 이동해 직원 2000명, 연매출 5000만 달러 규모의 봉제공장을 운영하기 시작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후 바이어들이 베트남, 중국 등 생산비용이 더 저렴한 국가들과 거래하며 결국 10년 만에 남미 사업도 접게 됐다. 실패감을 안은 채 뉴욕으로 돌아왔지만, 하이패션(대중적이고 실용적인 옷 디자인이 아닌 패션 디자이너의 철학이 반영된 이른바 고급 패션) 쪽에 종사하던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2011년 ‘샘플룸’을 시작했다. ‘샘플룸’은 옷을 생산하는 전체적인 과정을 다루며, 디자이너가 가져온 스케치로 샘플을 개발하고 바이어가 원하는 디자인에 맞춰 완성품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를 살려서 디자이너들을 고용했고, 전 세계에 수출되는 뉴욕패션위크 의류 오더를 받아 제품을 생산했다. 한국인 특유의 꼼꼼함, 본인만의 경험을 살려 디자이너가 그려낸 패턴과 스케치를 최대 퀄리티로 구현해냈고 패턴 개발과 생산을 동시에 해내며 현재는 30여 명의 직원을 두고 성공적으로 하이패션 사업을 운영해나가고 있다.  
 
수많은 회원 수를 자랑하던 한인봉제협회도 10년 전 사라졌고, 봉제업이 쇠퇴해가는 상황 속 살아남은 비결을 묻는 질문에 박 대표는 ‘정교함’을 꼽았다. 그는 “한국 공장과 타민족이 운영하는 공장의 차이점은 정교함과 꼼꼼함이라고 생각한다”며, “어떤 소재로 제품을 생산해내느냐가 관건”이라고 전했다.  
 
현재 봉제산업을 운영하는 한인은 40~50명으로 줄었지만 박 대표는 봉제업을 여전히 ‘장래성이 있는 분야’라고 평가했다. 그는 “예전과 달리 현재는 유학 와서 패션 공부를 한 친구들이 대부분 사업을 시작한다. 40년 넘게 봉제업에 종사해왔지만 직원을 써봐도 어떤 민족보다 한국인들이 뛰어나다”며, “한인들이 하이패션을 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퀄리티를 올리는 것에 집중해 사업한다면 충분히 장래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많은 굴곡이 있었지만 박 대표는 과거로 돌아가도 다시 봉제업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고객들이 한인 봉제업 대표인 나를 인정해주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이유에서다.    

글·사진=윤지혜 기자 yoon.jihye@koreadailyn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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