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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청지기의 사역

이희숙 수필가

이희숙 수필가

남편은 쇠약해진 몸으로 일흔 중반을 버티어 왔다. 그가 아픔을 견디어 낸 일 년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우리 가족은 남편이 곁에 있어 안도하며 감사한다.  
 
가족 중심으로 생일잔치를 열기로 했다.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한복을 찾아보려 옷장을 열었다. 그런데 걸려 있는 한복의 색깔과 디자인이 눈에 거슬렸다. 요즘 한복은 동전이 넓어지고 붕어 배처럼 불룩하던 소매는 일자 모양으로 좁아졌다. 내가 소중하게 보관했던 한복이지만 구식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한복도 늘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유행을 따라가기에 벅차다. 이 많은 한복을 어떡해야 하나? 행사 때 마다 즐겨 입던 한복이 이제는 처치 곤란한 물건으로 전락했다. 그렇다고 계속 입을 옷도 아닌데 새로 살 필요가 있을까. 한복집을 검색하니 ‘한복 대여’라는 홍보 문구가 눈에 띄었다. 이렇게 편리한 방법이 있다니. 대여해 입으니 부담 없이 간편했다. 더불어 테이블, 의자, 큰 양산까지 빌려 집 뜰에서 행사를 준비했다.  
 
크레딧이 좋으면 자동차도 리스로 빌려 탈 수 있다. 장거리 출퇴근을 해야 하는 딸은 새 차가 필요했다. 하지만 코로나 팬데믹 기간 자동차 생산량 감소로 새 차를 살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달리 방법이 없어 내 차를 타고 다녔으나 그 마저 문제가 생겼다. 그런데 얼마 후 드디어 새 차가 우리 집에 도착했다. 딸이 리스한 자동차였다.    
 


리스나 임대를 선호하는 것을 ‘렌탈리즘(Rentalism)’이라고 한다면 이를 청지기의 사역에 비유하고 싶다. 청지기는 집사(Deakonos)에서 유래된 말로 섬기는 자, 일꾼, 사역자 등을 뜻한다. 주인이 관리인인 청지기에게 지시를 내리면, 청지기는 주인을 대신해 재산을 관리한다. 맡겨진 것을 사용하고 나누어주며 감독권을 행하기도 한다.  
 
나 또한 청지기임을 깨닫는다. 사실 우리의 소유물은 아무것도 없다. 물질도 주어진 삶 동안 관리할 뿐이다. 소유욕에서 벗어나 남의 것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지혜도 필요하지 않을까. 청지기로 있을 동안 자기의 권위를 이용해 다른 사람의 빚을 탕감해주는 지혜로운 자도 본다. 살아가면서 청지기의 역할을 잘 수행하는 것이 물질을 현명하게 관리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물질뿐이랴. 사랑하는 자녀도 나의 소유물이 아니다. 독립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고 안내하는 것이 부모 역할일 뿐이다. 부모가 자녀를 소유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동학대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나의 삶 또한 육신을 빌려 입고 산다고 해도 틀리지 않겠지. 유효 기간이 지나면 겉 사람은 흙 속으로 돌려보내고 빈 영혼으로 떠나지 않는가. 청지기는 자기 몸과 재능, 물질, 시간, 정력을 바쳐야 주인의 인정을 받는다. 렌탈리즘의 사고를 생활 속에서 잘 적용해 본분을 깨닫고 충성스럽게 사명을 감당해야 하리라. 

이희숙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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