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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에스텔라와 호세

그동안 만난 사람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기억에 남는 이름들도 있다.  
 
딸이 큰 아이를 프리스쿨에 데려다주고 오는데 눈물이 나더라고  했다. 전문직 일을 하는 딸은 6개월의 산후 휴가가 끝나자마자 아기를 매일 데이케어에  보냈다. 어느새 자라 다섯살이 되어간다.  
 
딸의 문자를 보며 이민 와서 딸을 유치원에 처음 보냈던 날이 생각난다. 우리 가족은 34년 전 2월 시카고에 이민을 왔다. 시카고의 2월은 몹시 추웠다. 딸은 한국에서 유치원을 마치고 왔으나 나이 때문에 다시 유치원에 갔다. 입학 수속을 마치고 교실로 갔다. 선생님은 체격이 큰 흑인 여성이었다. 교실 입구에서 그 선생님이 딸의 손을 잡고 교실 안으로 들어가며  문을 닫았다.  
 
어린 딸이 얼마나 두려웠을까? 처음 보는 선생님은 한국 선생님과는 생김새부터 달랐다. 게다가 영어는 한마디도 몰랐다. 영어로 화장실 가고 싶다는 말도 할 줄 모르는데 어떻게 할까?  
 


유치원이 끝나는 12시 30분까지가 어찌  그리도 긴지 안절부절못하다 시간에 맞춰 유치원으로 갔다. 이윽고 벨이 울리고 교실 문이 활짝 열렸다.  딸이 웃으며 “엄마” 하고 뛰어와 품에 안겼다. “오늘 어떻게 했어? 힘들었지?” 하고 물었더니, “아니, 옆에 있는 아이 하는 대로 했어. 그 애가 노랑 크레용 칠하면, 나도 노랑 크레용 칠하고 그 애가 화장실 가면 나도 화장실 갔어.”  
 
내 걱정과 달리 딸은 똑똑하게 첫날을 잘 보냈다. 눈이 동그랗게  크고 머리를 길게 땋았던 ‘에스텔라’는 딸의 짝이었고 친절했다. 늘 웃는 얼굴의 ‘호세’는 길 건너편에서도 우리를 보면 손을 흔들며 반가워했다.  
 
딸은 착한 유치원 친구들 덕에 미국 생활에 힘들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다. 지금쯤 그 아이들도 엄마, 아빠가 되었겠지만 그들의 이름과 어릴 적 모습은 내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다.

박영혜·리버사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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