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철의 시가 있는 풍경] 보고 싶은 사람
청초한 꽃대 하얀 부추꽃 / 다소곳이 피어난 정갈한 과꽃 / 손 모아 기도하는 달맞이 꽃 / 당신 모습을 닮았네요 // 낮은 잔디를 쓸어주고 / 돌에 새겨진 이름 석자 서글퍼 / 붉은 장미, 안개꽃 내려 놓고 / 돌아 오는 길 // 석양 향해 걷고 있는 나를 / 마중하러 비가 내린다 / 꽃이 지는 뒤란의 오후 / 부디 그곳에서 평안하시라
햇빛 쨍한 날에 비가 내려요 / 잠시 생각이 지나갔을 뿐인데 / 올려다보니 당신이 있네요 // 홀로 남아 지난 일 떠 올리면 무엇 하겠어요 / 엎드리는 8월 호수가 서글퍼요 / 물새가 낮게 물결 위를 날아요 / 파도 속삭임에 마음 빼았겼어요 / 무엇 하나요 해 지는데 // 석양이 내려앉은 보랏빛 하늘가로 / 하나 둘 부서지는 물살의 구애 / 몇 일 찬비가 내리고 바람도 심한데 // 홀로 남아 지난 날 떠 올리면 무엇 하나요 / 뱃길 비추는 따뜻한 불빛 / 당신 잠깐 머물렀던 시간 내내 / 물결도 그리움마냥 출렁이는데 / 무엇 하나요 별 뜨는데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면서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다는 말은 내가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이해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의 마음은 아픔을 견디고 평안할거란 생각이 든다. 그 마음에는 오해와 갈등의 어려운 시간을 오랫동안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고통을 변화시켜 축복으로 바꾸어내는 신통이 있기 때문이다. 4자녀를 가진 청상과부였던 내 어머니의 삶이 그랬다. 죽음 후에 승리가 찾아 온다는 아이러니한 말이 성경에 쓰여 있다. 이미 죽었으니 그 후의 삶에 승리가 찾아온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혹이 따라 오는 것은 당연하다. 죽음을 끝으로만 여기지 말고 죽음으로 연결 되어진 과정의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감사가 있고 소망이 있고 사랑이 있었다면 그 죽음은 죽음을 넘어서는 승리의 또 다른 삶으로 연결 되어지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묘 앞에서 나는 늘 ‘고난이 축복이었고, 죽음 후 승리가 그곳에 있다’라는 역전의 삶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시간의 개념이 바뀌어진다는 말이 아니다. 시간은 상대적으로 길게도 혹은 짧게도 느껴질 수 있다는 생각엔 변함이 없다. 고통이 축복일 수 있고, 죽음이 승리일 수 있다는 말이다.
내 안으로 충실해질 때 사람도 꽃을 피운다. 내 어머니가 그러셨다. 이름도 없고 존재도 없었지만 어머니란 모습으로 충실해졌을 때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올곧은 꽃대를 내밀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겠는가? 사람의 향기가 나야 사람인 게다. 그 향기는 오랫동안 멀리 퍼져 살아남은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히 적신다.
비 오는 오후, 느슨해진 시간 / 뒤란에 비 내린다 / 마른 마음 적시고 / 산 등성이 그림자 몰고 오는 / 안간힘의 그리움이 희미한 잔상으로 기억 된다면 / 이별은 홀연해야겠지 / 숨겨둔 말 울림되 퍼지기 전 // 죽어야 사는 세상에 비 내린다 / 뽑힌 뿌리 하나 떠내려 갔던 / 한때, 무지개를 꿈꾸었던 (시인, 화가)
신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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