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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망설이면 내일은 없다

이기희

이기희

준비되지 않았을 때가 가장 준비된 때다. 할 수 없을 것 같아 망설이는 시간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매일 우리는 새 날, 새 아침을 맞는다.  
 
정든 사람을 떠나보내고 새 얼굴을 만난다. 사랑을 꿈꾸고 사랑을 떠나 보낸다. 손 내밀어 붙잡을 용기 없어 작별하고, 후회하며 그대 모습을 지운다. 머뭇거리고, 회피하고, 용기 없어 다가가지 못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용기는 굳센 기운이나 겁내지 않는 기개다. 용기는 삶을 지탱하는 동력이지만 지나치면 만용이 된다. 만용은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함부로 날뛰는 용맹이다. 세월은 강물 따라 흘러간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모든 환경이 좋아지고 확실해 질 때까지 기다리면, 시작도 하기 전에 종치는 일이 발생한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시작한 현대미술화랑이 중서부 백인 상류층에서 자리 잡기 시작하고 꿈에 그리던 아트스쿨과 창작예술센터를 건립했다. 주변의 격려와 찬사,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지만 정작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홍길동의 용기와 김삿갓의 방랑, 돈키호테의 만용과 모험이 뒤범벅이 된 성공은 뿌리째 흔들렸다.  
 


세계적인 여류시인이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접고, 내 나이 스물 셋, 출국하며, 바보처럼 다시는 가난과 싸우는 글쟁이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나’다. 잘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것도 오롯이 내 선택이다. 다시 글을 쓰고 싶어 식은 땀을 흘리며 온 몸이 쑤시고 아팠다. 오직 무언가 쓰고 싶다는 생각뿐, 작가의 역량을 갖추지도 못했고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갈피조차 잡지 못했다. 분명한 것은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다시는 할 수 없다는 사실, 영원히 후회할 것 같았다.  
 
25년 동안 작동을 멈춘 시계바늘을 되돌리고 마디가 굳은 손으로 아홉달 동안 밤 세워 A4용지 2만장을 집필했다. 남은 인생의 시간들에 ‘후회’라는 낙관을 찍을 수 없었다. 자전소설 ‘찔레꽃’ 두 권과 자전에세이 ‘여왕이 아니면 집시처럼’이 출간됐다.  
 
멀리 있어도 서로 통하는 선배에게 가끔 전화한다. 성악을 전공하신 분인데 늦깎이로 그림공부를 하시고 사별 후 그리움을 담은 참한 시집을 출간했다. 요즘도 시니어모임에 출품할 작품 그리기에 몰두하신다. 나이 탓에 외출 한 번 하려면 ‘꾸미는데 장시간을 소비한다’고 하셔서 한바탕 웃었다.  
 
오래 된 대학 동창이 전화해 ‘사는 게 너무 심심하다. 할 게 없다’고 불평하길래 뭔가 해 보라고 권했더니 ‘이건 이래서 못하고, 저건 저래서 못한다’며 백만가지 이유를 댄다고 했다. ‘무릎 손가락 관절이 불편해 할 게 없다’ 한다는데 시각 청각 장애인 핼런 켈러의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이란 책을 읽어 보셨으면 생각한다.
 
무엇인가를 향해 몰입하는 사람은 아름답다. 나이, 환경, 차별, 장애를 극복하고 꿋꿋이 자기 길을 가는 사람은 승리자다. 세상잡사를 뒤로 하고 진정 하고 싶은 일에 시계바늘 고정시키고 인생을 한 땀 한 땀 수놓는 사람의 손은 늙지 않는다.  
 
모든 예술은 서로 통한다. 형식과 표현 방법, 미디엄이 다를 뿐이다. ‘medium’은 '중간'이라는 의미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중간체, '매체'(媒體)라는 뜻이다. 예술은 인간을 서로 어우르고 상처를 꿰매주고 사람과 영혼을 잇는다.  
 
인생의 후반기는 망설일 시간이 없다. 인생은 인간이 그리는 가장 정직한 캔버스다. 자유. 행복. 고통. 이별. 아픔. 죽음에 이르기까지 생의 모든 것을 담는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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