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뜨락에서] 힘들 때 찾아갈 수 있는 장소
아들과 말다툼을 하고 집을 나왔다. 소낙비는 내리고 동네 몇 바퀴 돌았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고, 오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하는 수 없이 친구 집 문을 두드렸다. 친구는 무슨 일이냐고 묻는다. 내 얼굴이 상기되어 있어 걱정스러운 목소리였다. 아들하고 싸우고 갈 데 없어 왔다고 했다. 무조건 들어오라고 한다. 그날은 한국에서 온 손님도 있고 식구들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는 날이었다. 저녁을 준비하는 손길이 바쁘다. 염치없지만 의자에 앉아 손님과 담소를 하고 있었다. 식구들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그냥 나오자니 겸연쩍고 앉아 있자니 쑥스럽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어정쩡 버티고 있는 사이 안면이 있는 친구 동생이 왔다. 그래도 아는 사이가 훨씬 앉아있기 어색하지 않았다. 그래도 친구는 농담을 섞어가며 나를 위로한다. 식구처럼 편하게 있으라는 무언의 암시다. 파 잘게 써는 소리, 물 내리는 소리와 바쁘게 움직이는 손끝은 보이는데 맛있는 음식 냄새는 코를 자극하지 않는다. 너무 마음이 상해 신경의 일부가 마비된 상태인 것 같다. 어느새 처음 먹어보는 오리탕이 나왔다. 국그릇 위에 들깻가루를 듬뿍 뿌려 구수한 냄새까지 곁들였다.가끔 동네에 있는 식당을 찾는다. 그곳에서 일하는 웨이트리스는 생긴 것은 물론이고 그윽한 목소리와 거동까지 여러모로 영화 시스터 액트에 나오는 우피 골드버그를 닮았다. 어느 날 식사를 하러 다소 주뼛거리며 식당에 들어선 내게 그녀는 아주 반가운 사람을 대하듯 다가와 식탁을 안내했다. 친절함이 몸에 밴 사람 같다. 의례적인 친절이 아니었다. 그녀는 모든 손님과 마치 오래전부터 알던 사람을 만난 것처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해야 하는 일이 제법 많아 보였지만 그녀는 전혀 서두르는 기색이 없다. 자기의 일터를 우애와 따뜻함이 감도는 공간으로 바꾸고 있다. 그녀를 유심히 관찰했다. 식당을 떠나는 이들도 그녀를 찾아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다가 떠난다.
마음 둘 곳이 없는 세상이다. 경쟁이 일상이 된 세상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살다 보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외로움이 젖어 든다. 가족이나 벗들에게도 그 외로움을 쉽게 털어놓지 못한다. 칭얼거리는 사람 취급을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삶의 무게에 짓눌려 어찌할 바를 모를 때 찾아갈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한다. 그 장소는 특정한 공간일 수도 있고 공동체일 수도 있다. 아무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곳에서는 혹은 그의 곁에서는 그저 나답게 있어도 괜찮은 장소가 있다면 우리는 삶의 곤고함을 이겨낼 수 있다. 정원을 가꾸며 시름을 달래는 이들도 있고 밭에서 호미질하며 마음을 가지런히 하는 이들도 있다. 잔디밭에 종류가 다른 풀을 몇 시간 뽑고 나면 땀도 나고 심신이 피곤해지면 안으로 들어와 샤워하는 동안 잡생각이 멀리 도망간다.
가게와 같은 블록에 있는 이집트 교회가 있다. 교인이 5000명이라고 해서 놀랐다. 크지 않은 건물인데 그 많은 교인이 어떻게 예배를 드리나 의심했는데 하루는 손님이 곱게 차려입고 교회 안으로 들어간다. 그 교회는 일요일에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고 매일 같은 시간에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자기가 편리한 날짜와 시간에 맞추어 가면 되는 교회였다. 항상 교회 문이 열려있어 누구나 들어가 기도할 수도 있는 곳이다. 사람들 마음이 어수선할 때 찾아가 기도하는 안식처다. 마음이 편치 않을 때 나만의 괴로움을 떨쳐 버릴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
양주희 /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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