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우아와 방정 사이
아우라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산들바람의 여신이다. 여신의 이름은 미풍, 산들바람, 아침공기를 뜻하는 그리스어와 라틴어 아우라(Aura)에서 붙여졌다.
어느날 우연히 바람처럼 발이 빠르고 몸이 가벼운 아우라와 마주친 디오니소스 신은 한 눈에 사랑에 빠지지만 바람같이 달아나는 그녀를 잡을 수 없었다. 아프로디테 신에게 도움을 요청, 그녀가 이성을 잃게 해 아우라는 두 쌍둥이를 출산하지만 광기로 한 아이의 몸을 찢고 자신은 바다에 몸을 던진다.
예술작품에서 ‘아우라’는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를 뜻한다. 20세기 초 독일 사상가 벤야민(Walter Benjamin)이 예술 이론으로 도입했다. 예술 작품이 풍기는 고고한 분위기는 아우라를 통해 이루어지며 개성적이고 자율적인 존재로서 신비스럽게 다가와 친숙한 힘으로 우리를 끌고 간다고 설명한다.
나는 매일 ‘우아와 방정’ 사이를 오락가락 한다. 부드럽고 향기롭게, 중년(?) 여인의 우아함으로, 새벽 별처럼 청아한 모습으로, 온 몸에 향기로운 ‘아우라’를 걸치고 하루를 맞이한다. 성질 안 내고, 남의 일에 휘둘리지 않고, 유난 떨지 않고, 자애롭고 인자하게 늙는 연습을 한다,
아우라는 낮은 언덕에서 번지는 새벽 안개다. 청아하고 맑은 기운이다.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나만이 가진 고유한 향기다. 제압하지 않고, 목소리 높이지 않고, 허리 굽혀 귀 기울이며, 물망초 한 송이 꺾어 그대 창가에 바치는 사랑이다.
우아와 방정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아침 잘 차려먹고 우아하게 하루를 시작했는데 후배 전화 받고 반나절도 못돼 파토가 난다. 또 한인 교회가 둘로 쪼개졌다는 소식이다. 성토는 혼자 하는 것보다 여럿이 입을 맞추면 열불 나서 지껄이다가 문제에 문제가 발생한다. 교회 분규는 자주 듣는 일이라 면역이 생겼는데 예전에 다니던 교회 일이라서 흥분을 참지 못하고 오두방정을 떨었다.
성격은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다. 조금 누그러지거나 속도가 줄 뿐이다.
방정은 가볍고 점잖지 못한 말이나 행동이다. 남의 집 불구경 하듯 우아(?)하게 멘트를 날릴 수도 있었는데, 촐삭거리며 서론만 듣고 결론까지 읊어댔다.
진주는 조개의 눈물이다. 진주는 조개 속으로 이 물질이 침입했을 대 자신을 방어하고 보호하게 위해 탄산칼슘과 단백질을 분비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나이 들면서 외모는 치장의 한계를 절감하고 부드럽고 교양 있는 자태로 진주처럼 우아하게 살려고 고심한다. 벤야민은 아우라는 유일한 원본에서만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복제되는 작품에는 아우라가 생겨나지 않는다. 가장 나답게 진솔하고 정직하게 내 모습 그대로 사는 것이 내가 지닌 아우라의 참모습이다.
평상심에 금이 가고, 사는 것이 곤혹해지고, 믿었던 방어벽이 무너지고, 하릴없이 정쟁에 휘말려도, 낮아지고 넓어져서 마음 밭에 향기로운 꽃 한 송이 가꿀 수 있기를. 이름 부르지 않아도 해마다 돋아나는 들꽃으로 남아, 낮에 나온 하얀 반달에게 밤하늘 가득 채운 코발트빛 물감을 뿌려 줄거나.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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