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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는 손도 에로틱한 피아노 사이의 남녀…개봉 30주년 ‘피아노’

에이다 역의 홀리 헌터는 그해 오스카상을 수상할 수 밖에 없는 최고의 연기를 보인다. 작은 키의 헌터가 뿜어내는 열정과 그녀의 피아노 연주, 딸 플로라와 수화로 대화하는 놀라운 재능을 보였다. [Miramax Films]

에이다 역의 홀리 헌터는 그해 오스카상을 수상할 수 밖에 없는 최고의 연기를 보인다. 작은 키의 헌터가 뿜어내는 열정과 그녀의 피아노 연주, 딸 플로라와 수화로 대화하는 놀라운 재능을 보였다. [Miramax Films]

영화의 마지막, 피아노가 바다에 가라앉는다. 밧줄로 피아노에 발이 묶여 있던 에이다도 바닷속으로 가라앉는다. 적막함, 그 속에 답이 있다. 바다에 빠진 에이다의 고통, 그녀는 그 고통을 안고 살아왔다. 그 고통을 안아주는 남자 베인즈.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 곧 그가 다시 나를 안아줄 것이다.  
 
에이다는 말을 못한다. 베인즈는 글을 읽지 못한다. 말을 할 줄 알고 글을 아는 에이다의 남편 스튜어트는 에이다와 베인즈의 마음속에 사랑이 싹터 가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에이다는 6살 때 말을 않기로 작정한다. 결국 말하는 능력을 잃고 만다. 그 허망함과 좌절감, 상실감을 피아노로 표현한다. 피아노는 그녀의 삶의 전부이다. 그녀는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고요를 자장가라 부르며 잠이 든다. 어쩌면 아름답지 않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말을 하지 않기로 했는지도 모른다.  
 
진중한 페미니스트, ‘파워 오브 더 독(Power of the Dog, 2021)’의 감독 제인 캠피온. 1993년 그녀가 쓰고 감독한 ‘피아노(the Piano)’가 개봉 30주년을 맞는다. 영화가 끝나고도 오래도록 우리의 가슴을 저리게 했던 사랑 이야기 ‘피아노’.  캠피온은 깊고도 아픈 진실로 시대극 ‘피아노’를 연주했다. 로맨스의 에로틱한 표현 수위를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캠피온 감독은 이 작품으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최초의 여성 감독이 된다.  1994년 아카데미상 8개 부문에 후보로 오르고 홀리 헌터가 여우주연상을, 아역 배우 아나 파킨이 여우조연상을, 캠피온이 각본상을 수상했다. 당시 11세의 파킨은 역사상 두 번째 어린 나이로 오스카를 수상한 배우로 기록된다.    
 
5000여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플로라 역에 캐스팅된 아나 파킨. 그녀는 11세의 나이에 첫 번째 출연한 영화 ‘피아노’로 에마 톰슨, 위노나 라이더, 홀리 헌터(주연상 조연상 동시 노미네이트)등의 쟁쟁한 배우들을 제치고 오스카상 사상 2번째 최연소 배우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Miramax Films]

5000여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플로라 역에 캐스팅된 아나 파킨. 그녀는 11세의 나이에 첫 번째 출연한 영화 ‘피아노’로 에마 톰슨, 위노나 라이더, 홀리 헌터(주연상 조연상 동시 노미네이트)등의 쟁쟁한 배우들을 제치고 오스카상 사상 2번째 최연소 배우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Miramax Films]

 
1800년대 중반, 스코틀랜드 여성 에이다(홀리 헌터)는 6세때 말을 하지 않기로 작정한다. 처녀가 되어 피아노 교사와 관계를 맺고 딸 플로라를 낳았다. 교사는 도망가 가버리고 딸은 엄마의 통역사가 된다. 그녀의 아버지는 뉴질랜드의 토지 개발자 스튜어트(샘 닐)에게 딸을 팔아넘긴다. 배에 피아노를 싣고 플로라(아나 파킨)와 함께 뉴질랜드 해변에 도착한다. 스튜어트는, 에이다의 간청을 묵살하고 무겁다는 이유로 피아노를 해변에 남겨둔 채 떠난다. 그는 백인이면서 마오리족의 관습에 동화된 전직 선원 베인즈(하비 카이텔)에게 땅 80에이커를 양도받고 그에게 피아노를 넘긴다.  
 
에이다는 스튜어트가 자신의 유일한 소통 창구인 피아노를 팔아넘겼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남편이 집을 비운 사이 에이다는 플로라와 함께 마오리 짐꾼들을 지휘하던 베인즈를 찾아가 피아노가 있는 해변가로 데려다 달라고 애원한다. 처음엔 거절했던 그였지만 그녀의 단호함에 모녀를 해변가로 안내한다. 해변가에 버려져 있는 피아노를 보곤 너무나 행복해하는 에이다, 엄마의 피아노곡에 맞춰 춤을 추는 플로라, 그리고 에이다의 피아노 연주에 매료되는 베인즈!  
 
글을 모르는 베인즈와 말을 하지 않는 에이다는 피아노를 사이에 두고 레슨이라는 밀고 당기는 감정으로 소통한다. 베인즈의 유희적 요구에 저항하지 않는 에이다, 마침내 그녀에게 피아노를 내어주는 베인즈.  
 
피아노를 되찾은 에이다는 기쁘지 않다. 피아노 곁에 있던 베인즈를 생각한다. 그리고 베인즈를 찾아온다. 베인스는 자신의 사랑을 고백하고, 아무런 감정 없이 찾아온 것이라면 돌아가라고 말한다. 에이다는 그의 뺨을 때린다. 그가 밉다. 그러나 그를 끌어안는다. 아픈 사랑의 순간,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
 
결국, 그들의 밀회는 스튜어트에게 들키게 되고 에이다는 손가락이 잘린다. 그러나 끝까지 베인즈를 포기하지 않는다. 에이다와 베이인즈는 배를 타고 그곳을 떠난다. 에이다는 그들의 유일한 소통의 도구 피아노와 함께 자신마저 바다에 버린다.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미래를 함께할 사랑을 얻는 의식 행위다. 에이다는 손가락과 피아노를 잃는다. 그러나 그녀의 운명을 묶어 두었던 피아노로부터, 그리고 과거의 상처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다시 살아갈 수 있다.  
 
캠피온 감독은 뉴질랜드의 명문 빅토리아 대학에서 심리학과 교육학을 공부하다 인류학으로 전공을 바꾸었고, 대학 졸업 후 영국으로 건너가 미술을 공부했다. 그 후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호주 영화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했다. ‘피아노’가 캠피온의 초기 영화임에도 심오한 주제의식과 대자연을 배경으로 한 시각적 미장센으로 가득한 이유일 것이다.  
 
그녀의 최근작 ‘파워 오브 더 독’에서도 보았듯 캠피온의 영화는 언제나 묵직한 주제를 다룬다. 그리고 시각적이면서 시적인 그녀의 캐릭터들은 하나같이 질곡 같은 고통을 짊어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30여년을 사이에 둔 감독의 두 작품 ‘파워 오브 더 독’과 ‘피아노’는 캠피온의 페미니즘의 진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전혀 다른 두 개의 스토리를 매개하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사랑이라는 걸 발견하게 된다.  
 
세계를 구성하는 핵은 사람의 마음이고 그 마음의 중심에는 사랑이 있다. 캠피온은 전혀 다른 배경의 두 남녀, 사랑과 가장 거리가 먼 거처럼 보이는 남자 베인즈와 사랑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여자 에이다 사이에 사랑의 본능을 불어 넣는다. 그리고 사랑을 방해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늘어놓으며 두 사람의 영혼을 운명적으로 묶어 버린다. 캠피온의 세계관에서는 사랑은 필히 운명적이어야만 한다.  

김정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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