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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등신불과 여호수아 나무

김지영 변호사

김지영 변호사

이 나무를 보는 순간 김동리의 ‘등신불’이 생각났다. ‘우는 듯한, 찡그린 듯한, 오뇌와 비원이 서린듯한, 그러면서도 무어라고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랄까, 아픔 같은 것이 보는 사람의 가슴을 콱 움켜잡는 듯한’ 부처님.  ‘허리를 제대로 펴고 앉지 못한, 머리 위에 조그만 향로를 얹은 채’ 가부좌를 튼 부처님.  ‘등신불’에서 나오는 묘사. 산채로 자신의 몸을 태워 원을 세우는 소신공양.  죽음의 순간 뒤틀어진 육신 그대로 모신 등신불.  
 
잎새는 모두 바늘이 되어 가지 끝에 매달리고, 말라 죽은 바늘 잎새로 꽁꽁 싸맨 가지들, 가지는 가지마다 딴 방향으로 비틀리고 꼬부라져 있다. 하늘로 향한 큰 가지들은 두 팔을 올려 무언가 하늘에 간구하는 성자의 모습. 그래서 구약 성경에서 모세의 뒤를 이어 유태인들을 가나안으로 이끈 여호수아의 이름을 따서 여호수아 나무(Joshua tree)로 알려진 사막의 나무들. 이 나무들은 삶을 위해 몸부림치는 중생.  
 
소설 ‘등신불’의 주인공 만적 스님은 자신의 몸을 태워 부처님께 바치는 초인적인 공양을 한다. 한 달 동안 천으로 동여맨 몸뚱이에 기름을 붓고 마지막에는 불 향로를 머리에 얹는다. 불길 속에 일그러지는 얼굴 그리고 죽음의 순간 고통의 뜨거운 몸부림 그대로 등신불이 된다. 그의 전신을 금으로 덮어씌워도 그의 표정 그의 몸짓은 그대로 남는다.  
 
캘리포니아 사막 여호수아 나무의 기괴한 비틀림은 끈질긴 생명력의 형상이다. 물도 없는 척박한 땅에서 생명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절묘한 인연의 구도이다. 가시 같은 바늘 잎새로 물기가 날아가는 것을 최소화하고 이리저리 꼬이고 비틀어진 가지들은 물 저장을 극대화하는 자연의 이치이다. 큰 가지는 하늘을 향하여 울부짖듯 뻗쳐 있고, 작은 가지는 땅을 향하여 애원한다.  
 


등신불의 기괴한 몸짓은 어쩔 수 없는 몸부림을 그래도 최소화하려는 만적 스님의 ‘맘부림’이 녹아 있다. ‘몸부림’이 마음대로 부릴 수 없는 몸의 요동을 뜻한다면, 마음을 마음대로 부리지 못하는 흔들림은 ‘맘부림’ 이라 불러 마땅하다.  스님은 자신 어머니의 죄를 태워버리기 위해 소신을 한다.  
 
사람은 몸부림도 치고 ‘맘부림’도 칠 수밖에 없는 유정중생이다. 형상으로 나타나지 않는 ‘맘부림’이 더 아프다.  ‘맘부림’을 다스리지 못하면 골부림이 되고 칼부림도 된다. 유정, 정이 있다는 것은 마음의 분별이 있다는 뜻.  무정의 나무는 살기위한 몸부림은 있어도 그 몸부림을 보이거나 감추어야 할 ‘맘부림’은 없다. 그래서 여호수아 나무는 솔직하다.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면 나뭇가지는 어느 방향 어떤 모양으로도 꺾이고 비틀어지고 올라가고 늘어진다.  
 
만적 스님의  등신불이 효험이 큰 것은 아직은 인간 중생의 맘을 가지신 부처님이라서 사람들에게 더 감화가 큰 까닭이리라. 부처님이라고 인간 세계 감정의 티끌 하나 없이 다 털어 버린다면 범부들에게 위안을 줄 수 없을 터이다.

김지영 /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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