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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뜨락에서] 오디를 따서 풀잎에 담다

6월 하순의 이른 아침, 안개가 자욱했다. 이날도 어김없이 5마일 트레일을 걸었다. 햄스테드 비치 트레일은 요즘 오디가 한창 익어 가고 있다. 일주일 전부터 따기 시작했다. 소주를 부어 술을 담그고, 잼을 만들었으며 망고와 함께 믹서로 갈아 드링크를 만들어 마셨다. 나는 이날 오디를 딸 생각을 하지 않아 플라스틱 백을 준비하지 않았다.
 
트레일을 걷다가 오디나무에 눈이 갔다. 크게 잘 익은 오디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다. 담을만한 용기도 없고, 고무장갑도 준비하지 않았지만 아까워서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냥 두면 떨어져 내릴 것이다. 혹시 쓸만한 비닐 백이 없을까. 찾으면 바닷물에 깨끗이 씻으면 되겠지. 이날 따라 눈에 띄지 않아 누군가가 버린 물병을 주웠다. 병은 아무리 씻어도 깨끗해질 수 없을 정도였다. 포기할 생각을 하고 가는데 넓은 풀잎이 보였다. 두 개를 꺾어 새까맣게 익은 오디를 백여개 따서 정성껏 풀잎에 싸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오디를 따면서 문득 생각했다. 높은 나무에서 익은 오디가 저절로 떨어질 때 풀 위에 안착하기를 바랐다. 땅바닥에 떨어져 개미떼와 모기가 달려들지 않았으면 했다.
 
풀잎으로 싼 오디는 질식할 만한 비닐봉지에 갇히는 것보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집에 와서 주머니에서 오디를 꺼냈다. 바지 주머니가 온통 오디 물로 들어 있었고 속옷까지 붉게 물들어 갈아입었다. 올해는 오디가 많이 열리고 산책로에 토끼가 많아 어느 날은 마흔 마리를 만났는데 그중 일부는 갈 때 보고 올 때 또 본 것들일 것이다. 특히 새끼 토끼가 많아 마이크로소프트 빙 챗에 물어봤다. 들 토끼의 수명은 2년, 집토끼는 5년 정도 산다고 알려 주었다. 산책길 토끼는 뉴잉글랜드 산으로 무척 귀여운데 숲속에서 나와 뛰노는 공간(나는 이곳을 코트 야드라고 부른다)에 특히 흔하다. 나는 매일 일기에 오늘 몇 시간 걸었는지, 토끼를 몇 마리 만났는지 기록한다.
 
내 시의 반 정도는 아침 산책길에서 건진 것이다. ‘구도시에 살던 토끼들이 신도시로 이사한 것 같다. 살던 집은 팔았을까, 그냥 버리고 왔을까’(토끼들의 이사), ‘트레일에 해바라기가 만발했다. 늦가을, 해바라기는 해를 붙들고 놓아줄 생각을 안 한다. 산책을 마치고 공원 주차장으로 갔다. 그곳에도 해바라기기 있었다. 노인들이 담벼락에 의자를 놓고 앉아 해를 마냥 바라보고 있었다’(해바라기), ‘공원 쓰레기통을 들여다보았다. 빈 물병, 소다 병이 있었다. 청소원들이 쓰레기를 수거한다. 왜 내가 버린 아픈 기억, 후회는 가져가지 않았을까’(공원 쓰레기통).
 
산책로에서 가끔 사슴을 만난다. 사슴은 문득 나타나 힐끔 쳐다보고는 어딘가로 달아난다. 정을 주지 않는 항상 낯선 동물이다. 산책로에는 드물게 흰머리독수리 집이 있다. 처음 오는 사람들은 신기해서 카메라로 추적한다.
 
한때는 골프에 빠졌다. 15년 전 이곳으로 이사해 100분 산책을 하면서 시간 덜 걸리고, 안 맞는 공을 쫓아다니는 스트레스 안 받고, 돈 안 드는 트레일 워킹을 일과로 삼고 있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인사를 받는다. “10년도 넘었는데 그대로군요. 무슨 비결이 있으세요?” 그냥 매일 걸어요. 추워도 걷고, 더운 날도 걸어요. 비가 오면 우산을 받치고 걸어요. 생각하면서 걷는 것이 좋아요. 트레일에는 모든 것이 있어요. 오늘같이 오디를 따서 풀잎에 담는 날도 있어요.

최복림 /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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