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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잘 살면 잘 죽는다’라고

이기희

이기희

소멸은 가장 완전한 작별이다. 형태도 없이 사라진다. 소멸 (extinction)은 없어진다는 뜻이다. 다시는 만날 수도 만질 수도 없이 영영 사라진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관념 가운데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이다. 죽으면 다시는 형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잘 살면 정말 잘 죽을 수 있을까. 섣부른 예단이나 예측에 잘 동요되지 않는다.
 
확실한 근거 없는 정보에 휘둘리지 않고 판세나 대세에도 무관심하다. 인생을 중량의 법칙으로 저울질 하지 않는다. 기울어진 운동장에 혼자 남아 왕따 당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어차피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사는 게 속 편한 세상이다.
 


나는 확률을 믿지 않는다. 벼락 맞아 목숨 잃을 확률이 억만 분의 1이라 해도 내 머리에 벼락이 떨어지면 죽을 확률이 100퍼센트고 재수 좋게 안 맞으면 살 확률이 100퍼센트란 생각이다. 국어는 성적이 괜찮았는데 수학이 늘 꼴등이였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이 실질적인 연관성이 없다 해도 삶과 죽음을 동일선상에 놓으면 해답이 생긴다. 평탄한 길 따라 똑바로 걸으면 죽음이든 삶이든 방향이 같아진다고 생각한다.
 
‘부대괴재아이형(夫大塊載我以形), 노아이생(勞我以生), 일아이로(佚我以老), 식아이사(息我以死), 고선오생자(故善吾生者), 내소이선오사야(乃所以善吾死也). 대지는 나에게 몸을 주고, 삶을 주어 수고롭게 하고, 늙음을 주어 편안하게 해주며, 죽음으로써 나를 쉬게 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삶을 좋게 여기면 죽음도 좋은 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장자의 내편 여섯번째 대종사(大宗師)에 나오는 가르침이다.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사의 절대적 문제에 대해 의연하게 대처하면 죽음이 끝, 종말. 사라짐이라는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된다는 뜻이다. 생명은 한 호흡 사이에 존재했다가 흐르는 물처럼 사라진다는 설명이다.  
 
나이 들면 ‘웰 리빙’ 보다 ‘웰 다잉’이라는 단어에 숙연해진다. ‘잘 죽는 것’이 ‘잘 사는 것’만큼 중요하다.  
 
어머니는 잠자리에 드시기 전 무릎 꿇고 “일주일만 아프다가 데려가 주세요”라고 기도하셨다. “일주일은 왜 아프세요?”라고 짖궂게 물으면, “갑자기 죽으면 너희들 놀랄 테고, 일주일 정도는 돌봄도 받고, 멀리 사는 아들 손주 작별인사 받고 가야지” 하셨다. 어머니는 병원에서 퇴원하신 후 일주일 만에 돌아가셨다.  
 
5년째 불치병으로 사투를 벌이며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 하늘나라 가기를 간구하는 교인 소식을 들었다. 교회를 분열시키고 목사를 쫒아내고 교만과 중상모략으로 상처 입힌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지금 기억하고 있을까.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고/ 버리기엔 차마 아까운 시간입니다 / 어디선가 서리 맞은 어린 장미 한 송이/(중략) 날이 조금 더 짧아졌습니다/ 더욱 그대를 사랑해야 하겠습니다-나태주 ‘11월’ 중에서  
 
꽃은 홀로 피어나도 시드는 시간과 꽃잎이 흩어지는 순간을 술퍼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동안 사랑할 수 있는 만큼만 사랑하자. 그대를 껴안을 수 있는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 사는 것이 마음대로 안 되듯, 죽음이 뜻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해도, 마음 문 열고, 노을 등지고 바람 따라 길을 걷는다. (Q7 Editions 대표, 작가)  
 
 

이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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