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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내 탓이오

라만섭 전 회계사

라만섭 전 회계사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하던가. 불통의 원인이 자신이 아닌 남에게 있다고 믿는, 한 고집 센 사람을 가까이서 본다. 그는 모든 책임을 남에게 돌리고 자신은 언제나 잘못이 없다. 그에게서 건설적인 참여 의식이란 찾아 볼 수 없으며 매사에 피동적이고 불평불만을 일삼으며 사고는 항상 자기중심적이다. 필자는 자아 성찰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언제부터인가 이런저런 일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버릇이 생겼다.  
 
‘너 자신을 알라’ 고 한다. 자신을 앎으로써 내가 객관적으로 어떻게 투영되는지를 제대로 인지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소극적이냐 적극적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효과 면에서는 부작위(omission)도 작위(commission)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내 입에서 나오는 정제되지 않은 언사를 남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며, 오만과 독선으로 포장된 얼굴 모습과 인정미 없는 차가운 눈매는 사람들의 접근을 어렵게 할 것이다. ‘나이 40이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링컨의 말에 수긍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말하기 좋다 하고 남의 말 말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작자 미상의 옛시조가 떠오른다. 한번 입 밖으로 내뱉은 독설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을 뿐 더러 상대의 마음속에 큰 상처로 오랫동안 남게 될 것이다.    
 
미국의 제 33대 대통령 해리 트르먼의 책상 위에는 ‘The buck stops here’ 라는 싸인 판이 항상 놓여 있었다고 한다. ‘모든 책임은 최종적으로 나에게 있다’라는 뜻이다. 약 20년 전 한국에서는 고 김수환 추기경이 주동이 된 ‘내 탓이오’라는 사회 운동이 큰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사랑과 화해로 남의 잘못을 보듬어 용서하고, 자아 반성과 자기 성찰로 모든 것을 나의 탓으로 돌리자는 운동은 사람들의 영혼을 정화하는 순결 한 울림으로 다가섰던 것이다. 혹 나의 불찰이 원인이 되어 본의 아니게 피해를 본 분에게 용서를 비는 인류애적 정신에 호소하는 초 종교적 정신 운동이었다.  
 
정치인들이 스캔들에 휘말려 사과문을 발표할 때 ‘Mea Culpa’라는 말을 인용하는 것을 가끔 본다. 사전을 찾아보니 라틴어인 이 말은 가톨릭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한다.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나의 탓으로 돌리는 말로서, 영어의 ‘culpable’ 이나 ‘culpit’ 등도 ‘culpa’에서 유래 됐다고 한다.  
 
여기서 분명히 밝히고 싶은 것이 한가지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나 자신의 자기 성찰과 자아 반성에 역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다. 나 아닌 남을 비방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다.  
 
그물망처럼 서로 얽히고설켜서 돌아가는 현실의 사회 구조에서 때로는 자의 반 타의 반의 원인 제공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 과정에 직접 간접으로 연루되기도 하는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이 지녀야 할 공동 책임감을 느끼며 모든 것을 나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수도 있겠다.    

라만섭 / 전 회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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