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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아버지

내가 결혼을 하던 날 아침, 새벽 기도회에 다녀오신 아버지는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오늘 우리 딸 결혼식 날인데, 하나님께 아무 말씀도 못 드렸고 울기만 하고 왔다.” 또 목이 메셨다.  
 
“그동안 잘 입히고 먹이지도 못했고, 공부 잘한다고 늘 자랑스러워 하면서도 그렇게 가고 싶어하는 대학, 장학금을 주겠다는 대학에도 못 가게 했다. 네 남동생 하나 있는 것, 그 애는 대학을 보내야 하는데 내 공무원 월급으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되니…. 네가 좀 벌어 동생 학자금을 보태다오. 그래도 네 동생이 우리 집의 기둥이니 좀 도와다오.”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  
 
그때 그 시절엔 그랬었다. 여자는 웬만하면 공부 안 시키고 아들만 공부를 시켰다. 남아선호 사상이 투철했던 1950년대였다. 나는 그게 늘 한으로 남았고, 아버지는 평생 미안해하셨다.  
 
당시 여자는 시집가 남편 잘 보필하고, 아이들 잘 기르고, 살림 잘하는 것이 제일이라는 말을 늘 듣고 자랐지만 내 가슴속 응어리는 풀리지 않았었다.
 


아버지의 자상한 눈빛을 알면서도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그래도 아들이 제일이면서…”라는 생각을 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 아버지를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이제 나도 80을 넘어 9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자식을 키우고 세상을 살다 보니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원망했던 마음이 이렇게 후회될 수가 없다.
 
이젠 그 좁고 옹졸했던 마음, 나만을 생각했던 이기적이던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다.  
 
“아버지, 이젠 미안하게 생각하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만 이미 가시고 안 계시니….
 
불효했던 지난날,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물이 앞선다. 

노영자·풋힐랜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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